[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강희언 '사인사예도(士人射藝圖)'

  • 김남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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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3   |  발행일 2021-09-03 제37면   |  수정 2021-09-03 08:36
활을 쏘는 선비와 빨래하는 여인…음양의 조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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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언 '사인사예도'. 종이에 담채, 26×21㎝,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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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이어 태풍이 왔다. 올여름 열대야를 시원하게 날려준 것은 2020도쿄올림픽이었다. 모든 종목이 흥미로웠지만 특히 두 손 모아 지켜봤던 종목은 양궁이었다.

양궁 경기를 지켜보면서 담졸(澹拙) 강희언(姜熙彦, 1738~1784)의 '사인사예도(士人射藝圖)'가 생각났다. 이 그림은 야외에서 선비들이 활 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린 풍속화다. 활쏘기는 우리나라 선비의 필수 덕목이었다. 긴 역사를 지닌 활쏘기가 자연스레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로 각인된 것 같다.

활은 선사시대부터 사냥도구로 활용되었다. 동굴벽화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활은 사냥도구에서 전투용 무기로 사용되었고 15세기 총이 등장하면서 활은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부터 활을 사용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를 보면 활을 쏘며 사냥하는 모습이 노련하고 용맹스럽다. 신라에서는 활쏘기로 관리를 뽑았고 무예로 전승되었다.

강희언은 감목관(監牧官) 벼슬을 지낸 중인 출신이다. 감목관은 천문, 지리학, 측후 등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관상감이라 부른다. 농경사회에서 날씨와 관련 있는 관상감은 중요한 자리였다. 화원은 아니었지만 그림에 기량을 보인 그는 화가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는 모임에 참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조부가 시문으로 유명한 정래교(鄭來橋)였다. 또 외조부의 소개로 이웃에 살던 정선(鄭敾, 1676~1759)에게 그림을 배웠다. 대수장가인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 1727~1797)과 교류하며 당시 그림으로 이름을 날린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신한평(申漢枰, 1726~?), 김응환(金應煥, 1742~1789), 이인문(李寅文, 1745~1824) 등과 어울렸다.

'사인사예도'는 그의 작품 3폭을 모은 '사인삼경도(士人三景圖)' 안에 있는 한 폭이다. 다른 두 폭은 선비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인휘호도(士人揮毫圖)'와 선비들이 시를 읽고 읊는 '사인시음도(士人詩吟圖)'다. 개성이 강한 사실적인 작품으로, 간결하고 현장성이 돋보이는 화풍을 보여준다.

'사인사예도'는 근경과 후경으로 나누어진 공간에서 활쏘기와 빨래하는 장면을 동시에 담은 특이한 작품이다. 왜 그랬을까.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작가의 의미심장한 면을 엿볼 수 있다. 활을 쏘는 선비가 주제라면 빨래하는 여인은 부수적인 존재다. 어쩌면 남자 셋과 여자 셋을 배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설정해 놓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적인 활쏘기와 동적인 빨래가 대비를 이룬다.

또 다른 상상을 해본다. 우연하게도 그날 선비들이 계곡 주변에서 활을 쏘고 있었는데 위쪽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것을 강희언이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것이다. 초집중이 필요한 활쏘기와 수다를 떨면서 방망이를 두드리는 장면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화면 아래에는 잘생긴 소나무 앞에 돌로 언덕을 쌓아 올려 시야를 멀리 보이게 만든 둔덕이 있다. 그곳에서 세 명의 선비가 활에만 집중한다.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기려는 선비가 있는가 하면 등을 보이며 팔을 뒤로 뻗어 허리춤에서 새로 활을 빼려는 선비가 있다. 앉아 있는 선비는 활에 시위를 걸고 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세 명의 아낙은 선비들의 활쏘기에 아랑곳없이 빨래에만 열중한다. 각자 본인의 일에 성실하다. 활을 쏘는 인물은 크고 세밀하게 그렸다. 소나무와 널찍한 바위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채색했다. 멀리 계곡 상류의 세 여인은 작게 그렸고, 언덕과 바위를 엷은 색으로 처리하여 거리감을 주었다.

강희언이 남긴 작품은 많지 않다. 현존하는 '사인삼경도'를 보면, 신선하고 사실적인 면에 치중한 화풍이다. 당시 화단에는 작가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한 진경산수가 대세였지만 그는 눈앞의 풍경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사실화에 치중했다.

작품은 무한한 연습의 결실이다. 체육도 끊임없는 연마와 인내를 치러야만 원하는 기록을 낼 수 있다. '사인사예도'의 선비처럼 연습만이 자신을 이길 수 있고 좋은 결과를 얻는다. 선수들의 피땀이 메달로 연결되지 않아도, 그들의 노력 덕분에 잠시나마 한여름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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