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래퍼 '탐쓴'(2), 가장 촌스러운 에너지와 핫한 뮤직트렌드 믹싱…'대구 랩소디' 탄생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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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11   |  발행일 2022-02-11 제34면   |  수정 2022-02-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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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구에서 열린 '라이트 업 온 스테이지' 무대에서 탐쓴이 공연하는 모습. 〈사진제공=탐쓴〉


그는 올해 쉰이다. 래퍼 사이에선 경이로운 케이스로 본다. 1998년 '가리온'으로 데뷔해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싱글상,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노래와 음반 부문 싹쓸이 등, 아무튼 실력파 래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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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싱글 음원으로 공개된 '역전포차'.



대구출신 실력파 래퍼 MC메타 등 협업
사라진 트로트 '대구역 밤 11시' 재해석
새 비트와 유니크한 메탈 사운드 첨가
향토색 물씬한 로컬랩 '역전포차' 탄생

틈 날때마다 라임노트에 가사 만들어
동성로·달서구 등 지명, 소재로도 활용
클럽 파샤의 라우더 무대통해 첫 데뷔
軍 복무중 쓴 가사 토대, 첫 앨범 발매
어릴적 우상 화나 제안으로 서울서 무대

내 이름으로 된 정규앨범 3장 발매 이뤄
BTS 소속사 연락 와 작사가로도 참여
음악시장 변화, 랩 순수성 지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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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 광흥창역 근처 '어글리정션'에서 열린 '발아장원전'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표출해 주목을 받았다.

◆사투리 랩의 신기원 '역전포차'

그와 해리빅버튼의 리더 이성수, 그리고 작곡가로 참여한 캐시 노트(Cash note)가 참여한 가운데 3개월 걸려 새로운 곡을 지난 1월18일에 싱글 음원으로 발표했다. 내게는 자못 기념비적인 작업이었다. 1966년 김영하가 작곡했고 오기택이 불렀지만 세인들의 기억에서는 사라진 트로트 '대구역 밤 11시'. 일단 원작자들에게 연락해 샘플 클리어를 받았다. 그러고 난 뒤 힙합음악으로 재해석하여 메탈과도 결합해 새롭고 '나만 할 수 있는' 그런 트랙을 제작하겠노라 마음먹었다. 캐시노트와 MC 메타 형의 도움이 정말 컸다. 특히 캐시노트는 이성수 형을 섭외해 주었고 나로서는 너무나도 영광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동의하여 감사함을 표했다. 대구 사투리로만 이루어진 랩트랙으로 두 래퍼 역시 대구 출신이다. '로컬 래퍼' '대구를 대표하는'이라는 과분한 타이틀이 자주 붙기 시작했던 때였다. 정말 내가 대구 래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 작업은 그것에 대한 대답 같은 트랙이다.

가장 촌스러운 에너지와 가장 핫한 뮤직트렌드를 믹싱해 본 거다. 그 곡을 대구 사투리를 동원해 랩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물성을 핫하게 혼성교배하는 것, 그건 엄청난 창의력을 요구하는 절차였다. 가사는 나와 MC메타가 빚었고 랩은 나와 이성수가 맡았다. 넷이 각자한테 주어진 창의력을 최대한 고양시키면서 하나의 랩을 출산시킨 것이다.

이 곡은 대전블루스와 비슷한 '대구블루스' 혹은 '대구랩소디'라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린 원곡의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대구 생 사투리로 반죽했다. 그리고 제목도 '역전포차'로 고쳤다. 남녀 간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빅 브라더로 승화해 버린 '서울공화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 등도 풍자해봤다.

'기차표도 끊깃다 아이가/ 서울을 거닐다 파이다 싶어 가지고/ 내 결국 다시 대구로 와뿟네/ 개 쩌는 낙원 코 베뿟네/ 나중에 보제이 내꿈의 서울아 빠이/ 빠이져 이빠이 빡 뿌사진 이빨/ 삐까뻔쩍 빛나는 년놈들 한가득한 저 턱별시/ 대한민국 진짜 지방시는 죽나/ 그거 요새 메이커 이름이다 카더라(하략)'

그 시절에나 어울렸을 법한 B급 가사의 정서를 아방가르드하게 개사하는 것도 무척 버거운 작업이다. 하지만 난 원곡의 느낌을 완전히 혁파시켜 버렸다. 새로운 비트와 박자, 그리고 유니크한 메탈 사운드까지 끼워넣었다. 역전포차는 '모던'을 생명으로 하는 국내 랩 문화에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였다. 나는 역전포차를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한국 '로컬랩'의 신기원이라 자부한다. 수개월간 우리는 형제가 된 것처럼 서로의 감각을 최고조로 증폭시키기 위해 응원하고 열광했다.

역전포차를 비롯해 동대구역·성당못역 등 대구색이 물씬 풍기는 곡에 많이 집중하려 했다. 동성로·달서구·반월당 등 대구와 관련된 지명도 많이 소재로 활용한다. '053리믹서'를 만들 때는 MC메타와 마이노스와 의기투합했다.

랩이 탄생하려면 '팀워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주로 '가사만들기'에 주력한다. 그리고 그 가사를 공유할 만한 지인에게 전송하면 그는 그것에 맞는 비트와 랩라인을 작곡해 파일링을 해준다. 다른 친구가 만든 비트라인 샘플이 괜찮다 싶으면 즉시 그것에 맞는 가사를 붙여 보내준다. 그게 진정한 '크루(CREW) 스피릿'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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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파샤에서 데뷔

래퍼가 되기까지 내 삶을 한번 조망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누나가 들려주었던 에미넴과 닥터드레의 음악을 들었다. 영어로 빠르게 말하는 그들의 소리가 당시에는 낯설기만 하고 마냥 멋있게만 보였었다. 한국에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랩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때 알게 된 래퍼가 바로 '가리온'과 소울컴퍼니 레이블의 래퍼들인 '화나' '더 콰이엇' '매드클라운' 등이었다.

중2 때 난 뻔하기만 한 비트박스가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늘 듣는 힙합 랩 음악을 직접 작곡해보고 싶었다. 집이든 학교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가사를 적었고 소위 말하는 '라임 노트'라는 것을 만들어 들고 다녔다. 힙합 플레야 2008 디지×더 뉴올리언스의 더 뮤지엄 컴퍼티션에 참가해서 수상하기도 했다. 의외의 결과에 고무돼 나를 더 풀무질한다. '정글라디오'와 '힙합플레야 자작녹음게시판' 등에 내 결과물을 올리며 인터넷을 통해 나만의 커리어를 구축해나간다. 성인이 될 때쯤에는 길고 짧은 습작이 200개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1세 때 중구 동성로에 있던 클럽 파샤의 인기 코너인 '라우더'라는 무대를 통해 생애 첫 데뷔를 했다. 당시 게스트로 왔던 '화지'와 '레디'한테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음악으로만 알고 있던 유명한 래퍼를 눈앞에서 보고 함께 공연한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군대라는 새로운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 내 보직은 K200 장갑차 조종수. 군에서는 포상휴가를 미친 듯 따냈다. 휴가 때는 병영 내에서 쓴 가사를 토대로 스튜디오를 대관해 EP앨범인 'BLOND'를 만들었다. 전역 후 그걸 바로 발매하고 생애 첫 정식 앨범을 갖게 된다. 지금 그 음원이 유실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발매까지 됐던 나만의 야심작이었다.

서울에서 '어글리정션'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이때 래퍼 화나가 나의 믹스테이프 'Versday vol.1'을 좋게 평가했다. '무대에 서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메일로 보내왔다. 내 어린 시절 우상인 화나의 메일이라니! 난 기뻐 날뛰었다. 그러고 바로 상경, '발아'라는 공연에 참여했다. 운이 좋았다. 공연 경험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내가 1등이란 타이틀을 거머쥔다. 재차 '발아 장원전'에 나가게 된다. 거기서 보았던 래퍼가 쿤디판다, 브레이, 매드클라운, 아날로그소년 등과의 어울림.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그걸 계기로 정규앨범 제작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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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쓴 시대 개막

정규앨범을 3부작으로 대하드라마스럽게 기획했다. 2017~2021년 무려 3장의 정규 앨범을 '탐쓴'이란 이름으로 발매하는 것에 성공한다. 인지도도 관계망도 얇은 나에겐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3부작을 완성해 보이겠노라는 일념 하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수히 많은 아티스트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월 2번 이상 서울로 올라갔다.

3번째 앨범인 'NON-FICTION'을 낼 즈음 난 생각도 못 한 복병을 만나게 된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이 전면 중지되었다. 남은 것은 빚밖에 없었다. 청천벽력이었다.

빚도 남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어린 시절 내 우상들과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대구의 대표적 래퍼인 마이노스와 MC 메타, 그리고 화나, 이밖에 퀸와사비, 바이스벌사 ….

재밌는 일도 있었다. '아이유 - IN TO THE I-LAND'라는 곡에 작사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빅히트에서 연락이 와서 너무 신기했고 내 곡 'DA DA LAND'와 2집을 듣고 발굴해 준 모양이다. '지방의 랩도 중앙에 알려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난 쇼미나 랩 관련 대회에 참가한 이력이 전무후무하다. 앨범을 내느라 워낙 바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가 전부다. 예전에는 '멋이 없어서 내가 안 나가는 건가' 하고 자문했지만 알고 봤더니 나는 그냥 바쁜 것뿐이었다. 이제서야 그런 외부 미디어를 통한 다른 활동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태일힙합음악제'에 출전해 제2회 우승을 했고 동구 평화시장 '닭똥집 명물거리 로고송'도 1등을 차지한다.

지금 나는 임인년을 위한 정규앨범을 준비 중이다. 부채도 해결했고 다시 한번 달려봐야겠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탐쓴 프로필

대구 출신으로 상원고를 졸업했고 현재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 재학 중이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가사가 103개가량 있다.

2008년 힙합플레야 뉴올리언스 ×디지 더 뮤지엄 컴피티션 수상/ 2013년 대구힙합 공연 LOUDER VOL.1 데뷔/ 2015년 BLOND [EP]/ 2017년 정규1집 PULP FICTION [LP]/ 2019년 싱글 053 REMIX (Feat. MINOS, MC META)/2020년 대구시 공식 코로나 예방송 '동성로에 나갈 때까지' 발매/ 2020년 '아이유 - IN TO THE I-LAND' 작사 참여/2021년 대구시 청소년 정책 홍보영상 보컬 참여 및 편집 (대구시 청소년과)/2021년 TBS 제2회 전태일힙합음악제 우승/2022년 싱글 '역전포차 (Feat. MC 메타, 이성수 Of 해리빅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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