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시장 뒷골목에 자리한 양곱창 골목의 터줏대감인 백화양곱창, 그 6호집의 식탁 정경. 초벌(사진 오른쪽)과 재벌을 통해 먹도록 해준다. 소양·곱창·염통이 한 세트로 불판에 올라간다. |
대구만큼이나 내장(소양·막창·곱창류) 요리에 사족을 못 쓰는 고장이 부산이다. 대구는 곱창·대창·소양이 따로 놀지만 부산은 한 세트로 붙어 다닌다. 그래서 붙여진 '양곱창'. 소의 첫 번째 위장인 '양'과 작은 창자인 '곱창'을 붙여 양곱창이라 한다.
아무튼 부산 남포동은 양곱창 총사령부다. 자갈치농협 뒷골목을 시작으로 자갈치로 59번길 350여m 세 블록에 걸친 골목 50여 업소가 집단을 이루며 개별로 영업하는 '코너'까지 합치면 250~300곳. 양곱창 '단일 품목' 식당가로는 전국 최고다. 지금은 서면, 문현동, 해운대, 대연동 등 부산 전역을 찍고 서울 등으로도 진출했다.
자갈치 뒷골목은 한때 '마도로스 골목'으로 유명하다. 원양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술로 목을 축이던 공간이었다. 맥줏집과 작부 집으로 흥청대던 곳이었다. 만선의 배에서 내릴 때 선원들의 씀씀이는 대기업 임원 못지 않았다. |
◆원양 선원의 유토피아
자갈치 뒷골목은 한때 '마도로스 골목'으로 유명하다. 원양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술로 목을 축이던 공간이었다. 맥줏집과 작부 집으로 흥청대던 곳이었다.
망망대해를 돌아들던 선원들은 생선요리에 질려 있다. 양곱창은 싸고 맛있는 단백질. 하선하기 무섭게 먼저 이곳에서 짠물에 절은 목젖을 씻었다. 바다로 떠날 때도 바다에서 육지로 돌아올 때도 어김없이 양곱창에 젖어 들었다. 세상 시름을 잊게 해준 위안과 위로의 안주였던 것이다.
◆일본인 기생관광
1990년대 들어 엔고(円高) 시대가 무르익자 난데없이 일본인들의 부산 방문이 잦아진다. 이른바 '기생관광'이라는 음성적 관광이 맞물려 돌아가던 시절이다. 이때 일본인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던 곳 또한 양곱창집이었다.
자갈치 뒷골목 일대 250~300곳 영업
양곱창 단일품목 식당가로 전국 최고
육지 내린 원양 선원들 위로의 안주
70년 세월 터줏대감 장사 백화양곱창
양 씹히는 맛·곱창 기름맛 조화 '환상'
마늘양념 소스 버무려 굽는 소금구이
고추장 버무려 돌판 올리는 양념구이
먹고 남은 양곱창에 밥·양파 넣고 볶아
그 뒤 일본의 규슈와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일본인도 양곱창 요리를 보양식으로 널리 먹는다. 그런데 일본에 비해 부산 현지 양곱창은 가성비가 너무 좋았다. 자연 일본인의 필수 관광코스가 될 수밖에. 그런데 1980년대 전후 수산업 경기가 안 좋아졌고 이 골목은 양곱창집으로 하나둘 업종을 변경해 오늘에 이른다.
2000년대 접어 들어 부산국제영화축제, 먹방과 쿡방 덕분에 대중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양곱창골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남녀노소 즐겨 먹는 부산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남구 문현동의 곱창 골목에 있는 '칠성식당'은 2001년 영화 '친구' 때 알려져 핫플레이스가 된다.
기름(지방)의 맛이 어떤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불꽃 속 곱창. |
◆터줏대감 백화양곱창을 찾아서
가장 오래된 곳은 1952년 영업을 시작한 백화양곱창. 주인이 여럿이 있다. 흡사 스탠드바처럼 모두 11개 업소가 코너 장사를 하고 있다.
여긴 손님을 모시는 원칙이 있다. 호객 행위가 비효율적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일단 단골은 터치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테이블에 앉게 해준다. 하지만 일반 손님은 안내인이 순서대로 가게를 배정해 준다.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김초달 할매. 그는 자갈치아지매의 상징과 같은 존재이자 이 골목을 찾는 시름 많은 남정네들에겐 '대모'와 같은 존재였다. 김 할매의 가업을 혈족들이 잇는다. 셋째딸인 이구자, 그 큰딸 김시은은 이후 1호 사장, 작은딸 김예숙은 6호 사장, 1호 사장의 넷째아들 최정은은 현재 체인점인 '이구자양곱창'을 꾸려가고, 6호 사장 아들 김범직은 서울에서 태극음식 전문점 셰프를 하다가 귀향해 코너를 도와주고 있다. 자갈치가 알아주는 백화양곱창 패밀리인 셈. 바로 옆 대광곱창 등 주변 다른 가게도 40~50년은 족히 됐다.
오후 4시쯤 6호 가게에 첫 손님으로 앉았다. 양, 곱창, 대창, 염통이 4인 1조로 굽힌다. 불판에서 초벌, 석쇠로 옮겨져 재벌이 된다. 대구 뭉티기 양념장 같은 마늘에 참기름을 두른 소스가 맛의 중심을 잡아준다. 마늘 향과 곱창의 기름내는 환상의 복식조. 양의 가장 두꺼운 부위인 양깃머리는 관자보다 더 쫄깃했다. 대창의 곱은 참기름보다 더 구수하고….
남은 양곱창을 그대로 볶아 김에 싸 먹는 것을 별미로 친다. |
◆중독성 강한 디저트~ 볶음밥
현장에 오기 전 기자는 백화가 단일 가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럿이 모여 있어 무척 놀랐다. 가게 전체가 기름 범벅이 된 듯하다. 몸에 나쁜 기름기라 하지만 여기 오면 다들 기름 맛에 환장한다. 그 맛을 위해 가스가 아니라 연탄불을 사용한다.
여긴 정해진 거리가 없다. 손님끼리 엉덩이가 맞닿는 걸 당연시한다. 환풍기가 쉴 새 없이 돌지만 자욱한 연기는 빠질 줄 모른다.수십 년 기름기가 식탁과 테이블, 천장 등에 가득 엉겨 붙어 있다. 깔끔 떠는 사람들은 기름기 줄줄 흘러내리는 실내 공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뭐랄까, 경상도 사람이 처음 마주하는 삭힌 홍어 맛과 비슷한 '난감함'일 것이다.
소금구이는 마늘양념 소스에 버무려 석쇠에 굽고, 양념구이는 고추장 양념을 해 돌판에 굽는다. 양곱창과 밥, 양파 등을 넣고 볶아주면 볶음밥이 된다.
내가 최 시인을 바라 보며 '양곱창 엄지척~' 하니 그는 '대구 뭉티기 최고' 라고 화답한다. 밤의 그 골목이 곱창 같았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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