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히피, 자유로운 영혼과 惡의 모습 혼재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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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1   |  발행일 2022-07-01 제37면   |  수정 2022-07-0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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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 이미지 속 비틀스. 〈www.fanpop.com〉

속세를 떠나 자연 속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자유로운 감성으로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히피스럽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히피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나마 그 의미와 감성, 그리고 패션 스타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히피(Hippie, Hippy)'란 무엇일까? 그 정확한 시작 시기는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으나, 히피는 1960년대 미국에서도 동부의 뉴욕이나 보스턴, 워싱턴 등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도시보다 좀 더 자유로운 감성의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어 1970년대까지 확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내에도 일부 영향을 주어, 1960년대와 70년대에 청년 이상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경험했었고 기억하는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은 1950년대에서 이어온 경제적·기술적·산업적 황금기가 지속하는 듯했다. 그러나 흑인 민권운동, 여성과 소수자 차별에 대한 인권운동, 베트남 전쟁(1964~75)의 개입에 대한 반전 운동 등 기존의 사회와 규범이 지속되는 보수적 사회에 대한 급진적 개혁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과 분위기에서 반문화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강해지고 기이한 모습도 띠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반문화는 어느 사회나 어느 시기나 항상 존재하였지만, 1960년대 이후 히피, 펑크, 힙합 등 그 과격하고 특이한 표현과 영향력이 점차 커진 것을 볼 수 있다.

급격한 도시화에 거부와 소외감
구애받지 않는 감성 담아낸 패션
민속풍 자수·액세서리·긴 치마
구제옷·나체 모습, 자연주의 표방
굳은 사회, 히피 상징 꽃으로 융화
마약 환각·쾌락 추구…점차 쇠퇴

히피는 1960년대 경제 발전에 따른 급격한 도시화에 대한 거부, 물질주의에 대한 소외감,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 등 주류 사회의 관습이나 가치를 거부한 반문화 운동 중 하나로, 비폭력과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영적인 삶, 그리고 사랑을 추구하고 주장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이러한 사회의 일반적인 규칙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감성은 패션으로 직접 표현되었다. 남녀 구분 없는 긴 머리, 올 풀린 술 장식, 꽃문양의 자수, 나팔바지 형태의 청바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패션 스타일은 당시 유명했던 비틀스(Beatles),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같은 록 밴드나 밥 딜런(Bob Dylan) 등 가수들이 하면서 더욱더 젊은 대중의 관심을 이끌었다. 이들은 단지 패션 스타일뿐 아니라 음악에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이나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는데, 비틀스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은 차분하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인류애와 사랑의 가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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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중인 히피. 〈allthatsinteresting.com〉


히피의 패션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규율이나 의복 예절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패션 스타일을 보였는데, 일반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와 어려운 모습이 혼재되었다. 히피는 미국의 성공적인 도시사회에서 발생했지만 그들의 패션은 자연주의적·민속적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들은 자유로운 감성으로 인도, 모로코, 터키 등 아시아, 아프리카 관련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철학과 가치, 민속 문화를 받아들여 느슨한 형태의 민속적 스타일의 페전트(peasant:농민) 블라우스, 민속적 모티브의 수공예적 자수와 액세서리, 긴 치마 등의 패션을 착용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패션 품목은 나팔바지 형의 청바지와 함께 착용되어 상의는 날씬하고 아래는 퍼지는 텐트 같은 실루엣을 보여주었다.

또한 나일론과 폴리에스터의 섬유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면과 마 소재 등 천연 소재, 깨끗한 새 의류보다 구제 의류나 오래된 옷, 직접 염색하는 타이 다이(tie-dye), 때로는 나체로 자연주의적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특히 꽃은 히피의 상징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꽃을 활용해 딱딱하게 굳은 사회에 꽃으로 융화하고자 했으며, 꽃 자수가 놓인 블라우스와 스커트, 꽃으로 만든 머리 장식, 얼굴에 꽃문양을 그리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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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히피의 모습에는 반전과 평화 등을 주장한 긍정적인 면, 관습에 대한 거부감, 물질주의에 대한 소외감 표현 등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나, 히피에 대한 가장 부정적 면은 마약이었다. 이들은 사회적인 규범에 대한 거부로 개방성을 강조하였고, 마약의 환각과 쾌락을 추구하였다. 이는 마약 복용 후 환각적 상태를 의미하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라는 양식으로 이어져 선명한 형광색의 어지럽게 일렁이는 무늬의 시각 예술과 자극적인 음향의 음악 그리고 강렬한 형광색과 무늬의 패션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자극적인 형광색들로 꾸며진 몽환적 이미지의 음악 앨범 커버가 다수 출시되었다. 비틀스의 앨범 커버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히피의 경향은 쇠퇴하였다. 히피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히피 패션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트렌드에 크게 상관없이 우리는 봄과 여름이면 꽃 자수가 놓인 페전트 블라우스나 주름진 진 스커트 그리고 가을·겨울이면 술 장식이 달린 망토, 나팔바지 형태의 청바지 등을 볼 수 있다. 수십 년 전 10여 년 동안 미국 젊은 층의 반사회적 움직임은 현재 패션 디자인뿐 아니라, '히피스럽다'는 일반화된 이미지와 감성으로 공유되어 사회 속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어 2022년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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