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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
"음, 왓슨 보아하니 자네는 오늘 오후에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치고, 자네답지 않게 혼자서 술도 한 잔 마셨군. 어떻게 알았냐고? 자넨 오늘 오전엔 쭉 나와 함께 있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두어 시간 정도 자리를 비웠다가, 나중에 구두 밑창에 진흙을 잔뜩 묻혀 돌아왔지. 비도 오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 일대에서 진흙이 있는 곳은 우체국 앞 공사장뿐이고, 30분이면 다녀올 곳을 두어 시간이나 걸린 건 선술집엘 들러 혼자 술을 마신 것이지. 희미한 술 냄새와 파이프 담배밖에 피우지 않는 자네의 옷에서 나는 궐련 냄새가 그 증거야."
탐구심 강하고 필력 출중한 의대생
추리소설 '네 개의 서명'으로 유명세
부친·첫 부인·장남의 죽음 경험하며
심령론·강령술 빠져 곤욕 치르기도
소설 총 258편·칼럼 1천63편 집필
홈스 시리즈 135년간 절판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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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Sherlock Holmes), 현재까지 창조된 캐릭터 중 가장 성공했고 무엇보다 가장 영화화가 많이 된 탐정이다. 그의 현장 분석과 관찰력은 발자국, 담뱃재, 혈흔, 상처, 먼지, 마차나 자전거 바퀴 자국, 글씨체, 손톱자국 등의 흔적으로 범인을 유추해내고 사건을 해결한다. 현대의 법의학, CSI 과학수사와 범죄 프로파일링 기법도 이와 동일하다.
남들은 그냥 흘러버릴 수도 있는 단서조차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셜록 홈스는 1887년 발표된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수많은 셜로키언(Sherlockian·미국 열혈팬), 홈지언(Holmesian·영국 열혈팬)이 생겨났다. 그중 가장 오래된 팬덤은 영국보다 먼저 1899년 뉴욕에서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으로 열광한 미국 팬들이 1934년 설립한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스(Baker Street Irregulars)다. 셜록 홈스의 집 '베이커가 221B'에서 그 명칭을 땄다는 것, 뉴욕에서 상연된 그 연극에 찰리 채플린이 첫 출연했다는 것은 그들에겐 기초상식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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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창작자인 아서 코난 도일(Arthur Ignatius Conan Doyle, 줄여서 ACD로 부르기도 한다)은 1859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185㎝, 당시에는 보기 드문 장신으로 에든버러 의과대학을 나왔다. 집은 그다지 부유한 편이 아니어서 의대생 시절 외과 의사의 조수로,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포경선의 의사 겸 선원으로 아프리카로 향하는 화물선의 의사 일도 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에든버러에서 안과를 열었지만, 워낙 찾아오는 환자가 없어 시간이 남아돌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아서 코난 도일은 다독가였다. 고전문학은 물론 윌키 콜린스, 에밀 가브리오, 최초의 탐정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거 알렌 포를 비롯해 브렛 히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워드 블워리턴, 윌리엄 새커리, 찰스 리드, 조지 메러디스, 조지 보로, 워싱턴 어빙 등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소설을 최소한 한 번 이상씩은 읽을 정도였고 호기심과 탐구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독서와 남다른 경험 그리고 의대생 시절부터 단편소설을 주기적으로 잡지에 기고한 필력으로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한 첫 장편 '주홍색 연구'는 순조롭게 탄생했다. 셜록 홈스의 능력과 성격은 의과대학 스승이었던 조셉 벨 교수와 몇몇 지인들을 모델로 합성했고, 왓슨에게는 자신의 의사 이력을 투영시켰다. 평소 하루 원고 작업량은 단어 3천 개로, 타자기는 쓰지 않고 깨끗하고 정확한 필체로 종이에 썼다. 엄청난 집중력으로 사람들이 소란한 거실에서도 펜을 멈추는 법이 없이 쓴 초고가 거의 최종본이었다.
1890년 발표한 '네 개의 서명'으로 그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와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즈음 창간된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은 막대한 원고료를 제시한 그의 요구를 군말 없이 받아들여 시리즈 연재가 시작되었다. 그 유명세로 병원의 환자들도 늘어났지만, 그는 전격적으로 본업인 의사 활동을 그만두고 그때부터 전업작가가 되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으로,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출판 이래 135년 동안 절판된 적이 한 번도 없는 소설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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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시인 |
사실 그는 막대한 부를 안겨준 셜록 홈스를 결코 좋아서 쓴 것이 아닌 가벼운 소설 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괴기소설, 역사소설, SF소설, 호러소설, 밀리터리 소설 등 다른 장르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여러 편의 소설을 썼지만 대부분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결국, 문학적인 갈증을 느낀 그는 셜록 홈스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1894년 '마지막 사건'에서 시리즈를 종결시켜 버린다.
애국심이 강하고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성향이었던 그는 1901년 제2차 보어전쟁에 자원하여 군의관으로 일시 복무한 뒤 영국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수십 편 써서 발표한다. 1902년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어머니의 설득으로 기사(Knight Bachelor) 작위를 받고 서리주의 부지사(Deputy Lieutenant) 직을 잠시 맡았다. 그리고 국왕 에드워드 7세를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항의와 요청으로 장편 '바스커빌 가의 개'로 셜록 홈스를 복귀시키고, 스트랜드 매거진에 단편 '빈집의 모험'으로 완전히 부활시킨다.
전형적 영국 신사의 품성을 지녔던 그는 첫 부인 루이자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1906년 사망하자, 15살 연하의 진 레키와 재혼한다. 새 부인의 친정집 부근에서 이구아노돈 화석이 발견되자 고생물학에 큰 관심을 가졌고, 그것은 또 남미의 정글에서 선사시대의 익룡을 찾아내는 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탄생시켰다. 그의 호기심은 가끔 엉뚱하거나 세간의 비난을 사기도 했는데, 부친과 첫 부인 그리고 장남의 죽음을 겪고 심령론과 강령술에 심취해 유명한 사기 사건인 코팅리 요정사건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또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커 60년 동안 가정, 정치, 사회, 군사, 경제, 사법, 언론, 국제, 종교 등에 관해 언론에 기고한 글이 1천63편에 이른다. 이혼법 개정, 군인에게 방탄복을 입힐 것, U-보트 아이디어, 벨기에의 콩고 잔학행위 비판, 인종차별적인 편견 반대 등 수없이 많은 사안에 의견을 피력했다. 심령론의 정당성과 요정에 관해서는 1927년 '셜록 홈스의 사건집'을 끝으로 시리즈를 마무리한 뒤 1930년 심령론 강의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계속 기고 활동을 이어갔다.
'피터 팬'의 작가 J. M. 배리와 오페레타 가사를 쓰기도 하고, 실제로 런던 경시청을 도와 범죄사건을 해결하기도 하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실종된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행방을 추리해내기도 했다. 아서 코난 도일은 258편의 소설, 106편의 시, 22편의 희곡, 1천63편의 칼럼을 쓴 안과의사이며 탐정으로 세계의 모든 추리소설가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다. 그러면서 인종 차별을 극혐하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곧았다(Steel True, Blade Straight).' 햄프셔의 한 교회 묘지에 있는 그의 묘비명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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