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은 누구에게 사과해야 할까

  • 송국건
  • |
  • 입력 2022-10-03   |  발행일 2022-10-03 제22면   |  수정 2022-10-03 06:45
해외순방 푸념 발언은
진상 규명이 우선인데
무작정 사과하란 요구
정치적 논란 끝은커녕
또 다른 시발점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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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본부장

과거 툭하면 앞뒤 맥락 없이 "사퇴하세요"라고 윽박지르던 여성 국회의원이 있었다. 워낙 뜬금없이 우기는 바람에 그 말이 개그 소재가 되기도 했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에게 줄기차게 "사과하세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 그 국회의원이 떠오른다.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 진보 평론가뿐만 아니라 범여권 일각에서도 "사과하세요" 외침이 들린다. 유승민 전 의원은 "국민을 정말 너무 개돼지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은 당장 중단하고,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갈 문제"라고 했다. 유승민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여권 사람'이지만 윤 대통령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다. 그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건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뒤 푸념 삼아 했던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 주면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란 발언이다. 과연 윤 대통령은 사과해야 할까? 그렇다면 누구에게 해야 할까? 깨끗하게 사과하면 지나갈 문제일까.

일단 윤 대통령은 지금 단계에선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도어스테핑에서 "진상이 더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다는 건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자신은 '미국 의회' '바이든'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는데 MBC가 가짜(?) 자막을 달고 야당이 확대 재생산하는 바람에 한미동맹이 훼손된 데 대해 진상규명이 우선이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대통령실은 '한국 국회'를 지칭했고, OOO은 '날리면'이라고 했다고 설명한다. 현 단계에선 사과할 수 없다는 윤 대통령 입장에 수긍이 간다. 사과하라는 건 'XX들'이란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건데, 지금은 누구에게 사과할지조차 애매하다. 만일 뒷부분의 OOO이 '바이든'이면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에게 사과해야 한다. 반대로 OOO이 '날리면'이면 우리 국회에 사과해야 한다. 이때 쪽팔리는 사람은 윤 대통령 자신이 된다. 존엄한 대통령이 '비속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대상이 누구냐를 떠나서 국민 모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회의 마치고 나오면서 참모들에게 푸념 삼아 던진 말에 비속어 딱 한 단어가 섞여 있는 부분이 희미하게 녹음됐다고 대국민 사과를 할 일인가. 윤 대통령은 비속어를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XX들'이 '사람들'로 들린다는 의견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뭉뚱그려 "어쨌든 순방 중 발언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유감"이라는 정도의 사과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그런 두루뭉술한 사과로 소동이 가라앉는다면 대통령으로서 억울한 점이 있어도 마땅히 해야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어떤 형식의 사과가 나와도 유승민의 말과는 달리 절대 그냥 지나가지 않을 거다. 오히려 "그 봐라. 본인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자꾸 말을 바꿨느냐"며 '거짓말 프레임에 가둘 거다. 이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놓고 일부 '가짜 뉴스'를 포함한 '외교 참사론'으로 반등 기미를 보이던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을 끌어내린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박진 외교부 장관을 헌정사상 7번째 해임건의안의 제물로 삼아 단독 처리한 일도 '외교 참사' 프레임을 국정감사장으로 끌고 가기 위한 시도라고 봐야 한다. '사퇴하세요'라는 말은 약간은 애교스럽게도 들리지만 '사과하세요' 속엔 정치적 노림수가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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