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인문학의 위기와 확장 가능성

  •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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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0-31  |  수정 2022-10-31 06:46  |  발행일 2022-10-31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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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최근 몇 년간 지역소멸과 더불어 지역대학의 위기가 화두에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수도권 선호현상으로 인해 존폐위기의 기로에 서 있는 지역대학들은 앞다투어 구조조정을 하고 취업률이 낮은 비인기학과는 통폐합되어 학과명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 가속화되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분야가 인문학이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인문대학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니 관련 계통의 종사자들이 겪는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지역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대학들도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이지만, 지역대학이 갖는 위기는 수도권대학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기실 인문학이 홀대받아온 것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한때 스티브 잡스의 발언으로 인해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인문학이 각광을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취업률이 발목을 잡는 제도권 교육 안에서 인문학은 언제나 배고픈 학문 취급을 당해왔고 실제로도 배가 고프다.

그렇다면, 수도권 소재의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지잡대 취급을 받는 지역대학들은 이대로 인문학을 접고 오로지 실용학문만으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걸까. 대학별 속사정은 알 수도 없고 훈수를 둘 처지도 아니지만, 필자가 나름대로 찾은 해답은 지역학에 있다. 뻔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경쟁력은 철저히 지역에 기반을 두고 지역에서만 가능한 것들을 해나갈 때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010년경부터 참여한 지역사 연구모임활동이 계기가 되어 7년 전부터 향촌동 수제화골목에서 작은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한일교류 플랫폼 활동과 더불어 지역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인문학 강연을 종종 개최해 왔다. 예를 들면 '동네석학이 들려주는 대구이야기' '골목화담' '향촌동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세계적인 석학을 만날 기회는 드물지만 우리 동네만큼은 우리 지역 사람이 제일 잘 안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프로그램들이다.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며 만들어가는 이러한 인문학 프로그램은 강의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지역사가 힘을 발휘한 사례는 또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으로 문체부가 공모한 문화가 있는 날 사업에 지역 활동가들과 중구 도심재생문화재단이 협업한 제안서가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 필자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해 총 7회의 강연과 2번의 아카이브 전시에 참여했는데 올해 마지막 강연이 지난주 무영당에서 열렸다. 무영당은 대구에서 조선인 자본으로 설립된 첫 백화점이다. 현재 대구시가 매입하여 공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무영당의 존재와 그 역사를 아는 시민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인문학 프로그램은 지역사와 관련한 이러한 의미 있는 공간이나 인물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역예술가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도 갖고 있어 매 강연 공연이나 전시 등을 결합하기도 했다. 무영당 강연에서는 인문기반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그룹을 초청했는데, 멤버 중에 증조부가 1955년에 무영당에서 서화전을 연 연주자가 있어 그 특별한 인연을 퍼포먼스로 풀어내 주기도 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문학은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이 가능하고 우리 지역만이 가진 색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생각을 조금만 비틀면 인문학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이것이 지역민들이 가진 진정한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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