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속을 채워야 자존이 산다

  • 정만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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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12-02  |  수정 2022-12-02 07:48  |  발행일 2022-12-02 제14면

[정만진의 문학 향기] 속을 채워야 자존이 산다

당나라 시인 가도가 보행 중 좋은 시상이 떠올랐다. 발걸음을 멈추고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지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풀길이 뜰까지 거칠게 이어져 있구나(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새는 물가 나무에 깃들었는데(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스님이 달 아래에서 문을 두드리네(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가도는 스님이 달 아래에서 '문을 두드린다(敲)'와 '문을 민다(推)' 중 어느 쪽이 한밤중의 적막을 묘사하는 데 더 적합할지 결론을 짓지 못했다. 그래서 길 복판에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러느라 고위 관리 한유의 행차를 가로막는 사태가 빚어졌다. 당대의 문장가 한유는 가도를 꾸짖지 않고 "내 생각으로는 '두드리다'가 좋을 듯하네"라며 조언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막역한 시벗으로 지냈고, 글 고치는 일을 '퇴고(推敲)'라 하게 되었다.

824년 12월2일 타계한 한유는 후한 이래 당나라 사대부들의 글세계를 휘어잡고 있던 병려체(騈儷體) 대신 정통 문장을 쓰자는 고문운동(古文運動)에 열성을 바쳤다. 유미주의 경향의 병려체는 표현을 지나치게 중시했고, 그 탓에 사대부들이 글을 쓸 때 내용보다 형식에 집착하는 병폐를 낳았다.

한유는 백성을 교화하고 정치를 바로잡아 풍속을 바르게 만드는 데에 유학 문장의 존재 가치를 두었고, 병려문은 그것을 해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문장의 실용성과 정확한 내용 전달 중심의 문이재도(文以載道)를 주장했다. 사람들이 한유의 말에 수긍하면서 세상 문장이 바뀌었다.

자연은 봄이 여름·가을·겨울을 거쳐 다시 봄으로 바뀐다. 하지만 어린이가 청년·장년·노년을 거쳐 다시 어린이가 되지는 못한다. 나아져야 진정한 인생인데 사람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나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공자의 가르침도 그런 인식을 담고 있다.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과 타인을 재단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가르침일 터이다.

의자로 만들어도 앉을 수 없으면 의자가 아니고, 식탁으로 만들어도 앉는 데 쓰이면 그것은 의자이다. 하지만 사람은 타고난 용도가 없다. 겉보다 속을 채워 자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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