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살로메 소설가 |
토론 수업, 영화 '로마'의 주제를 저마다의 단어로 이야기 나누는 중이었다. 가족애, 상처, 헌사, 여자들, 계급 등등의 말들이 거론되었다. 한 회원이 '결핍'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다들 까르르 넘어갔다. 결핍이라는 말은 평소 내가 애용하는 말이었기에 패러디로 받아들여 그런 반응을 보인 것 같았다. 문학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물어오는 수강생들에게 나는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결핍이란 말을 들먹이는 강사였다. 결핍은 문학의 필수 용어라고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원하는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을 못 가지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문학의 전제 조건이 성립된다. 범위를 좁혀 문학적 글쓰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르겠다. 결핍이나 결함을 불러내 그것을 극복하거나 파멸하는 과정을 그리는 게 글쓰기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연민하고 위무하거나, 공감하고 반성하면서 하루하루를 풍부하게 한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 전반이 그러하고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역시 결핍을 다룬다는 회원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멕시코시티의 로마 거리에 사는 보모 클레오와 안주인 소피아는 중요한 무언가를 못 가진 주인공들이다. 애인이나 남편은 도망치거나 떠나버렸다. 문학이나 영화나 삶이 그렇듯, 두 여자는 절절하게 결핍한 자들이다.
다행히도 결핍은 시작이되 끝이 아니다. 결함이나 결핍 자체는 두려움도 되지 않는다.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나 동기가 무너질 때 두려움으로 변할 뿐이다. 결핍은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미끼 역할일 뿐이다. 물론 그 해결에는 답이 없다. 답이 있을 필요도 없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독자의 몫이다. 문학이나 글쓰기는 결함에서 시작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없고, 결핍에서 출발하지 않는 공감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영화에서 소피아의 주차 장면은 결핍을 넘어서려는 주인공의 좋은 예시로 읽힌다. 가장 역할을 하는 소피아에게 쓸데없이 커다란 갤럭시 차의 안녕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좁은 공간, 허세 부리며 주차 예술을 보여줬던 남편의 방식은 소피아의 것이 아니다. 작정이라도 한 듯 차고의 대문을 연거푸 박아 버리고도 모자라 모서리 벽까지 시원스레 뭉개버린다. 시쳇말로 '사이다' 주차를 해버린다. 그깟 차 좀 망가지면 어때. 남편에게는 차의 '뽀대'가 중요했겠지만 소피아에겐 어린 자식들을 건사해야 할 의무가 훨씬 가치 있는 일이었다.
결핍은 성장의 발판이다. 클레오와 소피아는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다. 내면의 불안을 다잡으며, 떠난 남자들이 남기고 간 불운의 전염성을 합심해서 차단해버린다. 계층은 달라도 사랑은 한 가지임을 두 여자는 연대 의식으로 실천해 나간다. 위기와 상처가 더할수록 평온한 일상을 희망한다. 결핍 덕에 삶이 단단해지고 결함으로 인해 고뇌가 축복이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결핍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인정에 대한 찬사 없이 어떻게 삶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누군가 문학이나 예술 같은 것에 대해 묻거든 어리석게 답해도 좋으리. 오직 결핍하라!
영화 속 해변, 소피아와 클레오가 아이들에게 다짐한다. 더 많은 모험을 꿈꾸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자고. 결핍을 앓는 모든 이에게 그 말이야말로 여전히 유효한 답이리라.
김살로메 소설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