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최초의 무조음악 오페라,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예술 향유에 거대한 걸림돌인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 '낯선 예술'

  • 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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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6 08:18  |  수정 2023-01-06 08:23  |  발행일 2023-01-06 제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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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리세우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오페라 '보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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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바이올리니스트, 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무조음악이란 장조와 단조 등의 조성의 질서에 반대되는, 과거 몇 백 년간 이어온 질서와 결별한 음악으로 20세기 초 작곡가 쇤베르크로부터 발전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나 급진적으로 변했던 20세기 초반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반영한 음악의 변화였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 샤를 페기가 "세상은 최근 30년 동안 그 이전 1900년 동안 변한 것보다 더 많이 변했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쇤베르크의 제자 알반 베르크(1885~1935)는 1914년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의 연극 '보이체크(Woyzeck)'를 보고 감동을 받아 오페라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뷔히너가 이 작품을 쓰던 도중 갑작스럽게 사망해 원작은 사실상 미완성 상태인데 이것을 작가 프란초스가 편집했고, 뷔히너 전집을 출판하면서 이 작품도 포함했다. 이 과정에서 제목을 잘못 기재해 '보체크(Wozzeck)'로 발표하는 바람에 베르크의 오페라 제목도 원작과 다른 '보체크'가 된다.(이후에 작곡가는 이 사실을 알고 오페라의 제목을 보이체크로 바꿀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보체크를 선택했다)

원작은 실제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보이체크라는 젊은 남성이 자신의 애인을 살해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겉으로는 우아함을 유지하면서 그 이면의 어두움을 외면하거나 감추고 있던 '세기 말 비엔나'의 시민은 이성과 도덕을 추구하는 듯했지만 뒤에서는 치정 살인 따위에 대해 수군거리길 좋아했다. 하지만 작가 뷔히너의 관심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가 보이체크라는 청년을 어떻게 고립과 정신 분열의 상태로 몰아넣었는가 하는 점에 있었다.

극 중 주인공인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는 장교의 면도를 해주며 장교의 도덕적 설교를 들어야 했고, 의사의 임상 실험에 참여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그는 기득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생을 산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사회에 순응하며 사는 것 같지만 그의 내면은 이미 너무 망가져 있다. 그런 보이체크에게 유일한 삶의 희망과 보람은 사랑하는 애인 마리이다. 둘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그런 마리가 군악대 대장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다. 그런데도 보이체크는 군악대 대장에게 모욕을 당했고 결국 사랑하는 마리를 살해한 후 자신도 연못에 투신하고 만다. 장교와 의사는 기존의 사회적 권위와 시민 계급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들은 도덕이나 학문과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적어도 겉으로는 고상한 인간들이지만, 보이체크와 같은 하층민을 '하찮은 자'로 취급하고 멸시하는 위선을 보인다. 또한 보이체크와 같은 하층민인 마리와 안드레스는 가난과 고통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의지하거나 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보이체크를 더욱 고립시키는 무력함과 비열함을 보여준다.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비참하게 파멸되는 나약한 인간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 시민 비극은 작곡가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작곡가는 빈의 레지던츠 극장에서 이 연극을 감상했고 곧바로 오페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이듬해 군에 입대한 베르크는 1917년부터 오페라 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군 생활을 통해 그는 보이체크라는 인물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자신의 아내인 헬레네에게 쓴 편지에 '나는 이 인물 속에 내가 어느 정도 투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와 같이 내가 증오하는 사람들과 생활하고 굴레에 갇혀 병들고, 체념하고, 실제로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베르크는 막이 없는 25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프란초스와 란다우의 판본을 기초로 3막 15장의 오페라 대본을 재구성했다.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1막의 5개 장면, 갈등이 고조되는 2막의 5개 장면 그리고 파국의 내용을 담은 결말 부분인 3막의 5개 장면으로 구성했는데 이는 작곡가가 나중에 밝힌 바와 같이 음악의 대칭적 형식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음악과 극이 결합하는 과정에서도 음악은 음악적인 원래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작곡가는 다양한 음악의 양식들을 사용하고 각각의 장면들에 음악적 특성을 부여해 상황, 인물의 감정과 성격 등을 묘사한다. 각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1막에서는 조곡(Suite), 랩소디, 파사칼리아 같은 짧고 작은 규모의 형식을 주로 사용했지만, 갈등이 고조되는 2막에서는 음악적 규모가 큰 다악장의 관현악곡을 주로 사용했다. 3막은 6개의 단일음, 리듬, 조성, 핵사코드(6음 음계) 등의 특징을 가진 작은 규모의 곡들로 구성해 2막을 축으로 1·3막이 형식과 규모 면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한, 매우 견고한 짜임새를 갖췄다.

이 작품은 조성이 없는 무조음악이다. 표현주의(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 경향과 반대되는 것으로 대상의 사실적 재현을 거부하고 개인의 주관적·감정적 반응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기존의 고전·낭만주의 시대의 작품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음악적 어법들이 담겨있다. 표현주의와 그 이후의 예술은 꾸준히 '낯선 예술'로 자리 잡아 약 12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많은 사람의 예술 향유에 거대한 걸림돌인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필자는 앞으로 이런 작품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무엇을 추구하는지 소개하며 어떻게 접근하고 감상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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