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김경후의 '넙치'

  •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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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2  |  수정 2023-01-02 06:55  |  발행일 2023-01-02 제33면

그래, 나 바닥이다, 울툭불툭, 넙치, 시장 바닥에 누워 있다, 뭘 보고 있나, 그것, 진창 바닥보다 넓적하게, 바닥의 바닥이 되면서, 대체 뭘 보고 있나, 가끔, 이게 아냐, 울컥, 찌끄레기를 게운다, 뒤척인다, 하지만 다시, 눌어붙어, 바닥이 되지, 바닥, 뭘 볼 수 있나, 게슴츠레, 흰 눈자위로, 울컥, 찢어진 노을, 키득대는 웃음, 흐르고, 슬리퍼 끄는 소리, 지날 때마다, 울컥, 소리친다, 그래, 나, 바닥이다, 그것, 더욱 맹렬히 바닥이 되기로 맹세한다, 끌로도 끝으로도 떼어낼 수 없는 바닥, 더 바닥, 더, 더 바닥이 되기로 울컥, 김경후의 '넙치'

[송재학의 시와 함께] 김경후의 넙치
송재학 (시인)

넙치가 표준말이고 광어가 사투리이지만, 사투리가 더 익숙해지면서 광어도 표준말이 되었다. 하지만 넙치가 표준말이라는 것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래, 나 바닥이다, 울툭불툭"이라는 우리가 좋아하는 횟감 넙치의 사연이 여기 고스란히 있다. 숨 막히는 쉼표의 사용은 넙치라는 물고기가 바다에 적응하여 납작하게 된 사연처럼, 시는 바다의 바닥과 생의 바닥을 같이 공유한다. 그래서 시는 눈이 한쪽으로 몰린 넙치의 생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넙치라는 입말을 속삭이게 만든다. 바닥도 모자라서 바닥의 바닥까지 죄다 수용한 넙치이다. 그 바닥에 "게슴츠레, 흰 눈자위로, 울컥, 찢어진 노을, 키득대는 웃음, 흐르고, 슬리퍼 끄는 소리, 지날 때마다, 울컥, 소리친다"는 것들이 살아서 퍼득이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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