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 '전통초가 지킴이' <주>바우 박정호 대표…서울서 패션사진가로 살다 고향 예천 금당실마을서 전통초가 살리기 매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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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06 08:05  |  수정 2023-01-06 08:09  |  발행일 2023-01-06 제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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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전통 초가. 그걸 직접 수작업으로 이엉을 엮어 올리는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하다. 패션사진작가의 삶을 뒤로하고 고향 금당실마을로 돌아와 전통초가문화살리기에 헌신하고 있는 박정호 농업회사법인 〈주〉바우 대표가 고향집 우천재 대문채 초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3일 흥미로운 세미나가 예천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렸다. 문화재청과 경북문화재단이 지원하고 농업회사법인 <주>바우 박정호 대표와 이종주 시인이 총괄 기획한 '손 이엉 전통 초가 어떻게 할 것인가'란 세미나였다. 모두가 망각하고 있던 초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형남 한국민속촌 학예사, 이호응 <사>한국저작권법학회 명예회장이 주제발표를 했다. 박 대표는 전통초가 현장사례를 발표하면서 현재 국내 초가의 현주소와 개선 방향에 대해 진단을 했다.

◆초가 품은 패션사진가

기자는 멸종 수순을 밟고 있는 전통 초가(草家)를 지키려는 박 대표의 마인드가 매우 귀해 보였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예천으로 갔다.

그는 환난당할 가능성이 없어 한국 십승지(十勝地) 중 한 곳으로 불리는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마을 출신. 그는 거기 부모가 살던 한옥인 우천재(愚泉齋)에 살고 있다. 그는 올해도 지인들과 함께 대문채 지붕 초가를 직접 이었다.

계명전문대 사진학과 출신인 그는 상경, 한때 패션사진가로 꽤 잘나갔다. IMF 외환위기 이전, 많이 벌 때는 하루 460만원도 벌어봤단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귀중한 패션 사진 도난 등으로 10억원 이상 빚을 지게 된다. 빚쟁이의 나날이었다. 잇단 악재로 재산을 다 날리고 반지하에서 살며 실내포차까지 운영해야만 했다.

이게 아니다 싶어, 미련 없이 서울 생활을 접고 2008년 여름 귀향한다. 고향 떠난 바우의 낙향, 하지만 금당실은 그를 오매불망 기다려준다. 그가 나타나자 마을의 조도가 확 밝아진다. 그는 '금당실전통마을보존회' 으뜸 머슴을 자청한다.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한 22세기형 마을 만들기에 돌입한다. 우선 전통문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다. 일환으로 전통음식 만들기를 시작했고 그 첫 단추는 된장이었다. 10가마 이상 콩을 삶아 메주를 매달았다. 반응이 좋아 금세 다 팔린다. 현재 마당 옆 장독대에 놓인 100여 개의 옹기가 당시 일의 치열함을 암시한다.


새마을운동으로 역사 뒤안길 초가
전국 각지 상당수가 정통 아닌 짝퉁
고향마을에 韓초가 메카 만들자 다짐

볏짚 묶고 건조 작업 인원 20명 투입
인건비도 10여 년 전보다 3배나 올라
1인당 하루 8m이엉 13개 정도 엮어

짧은 벼종자 개량, 긴볏짚 구입 어려움
전통초가로 만든 시범마을 조성 필요
초가장인 등 지원…젊은층 유도해야



◆내 별명은 바우

그는 말투도 무척 우직하고 뚝심도 강하다. 그래서 예천 대창고 시절에는 담임선생으로부터 '바우'란 별명을 얻게 된다. 바우정신은 잠시 그를 패션사진 전문가로 만들어주었지만 이내 그게 천직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예전에 보지 못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게 바로 전통문화의 가치다. 그 1탄이 된장 담그기, 2탄은 초가였다.

콘크리트 건물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그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그 시절 민초의 마지막 보루였던 초가, 그게 새마을운동을 계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볏짚을 갖고 이엉을 만들어 초가를 수작업으로 이기 시작한다.

현재 금당실마을에 얼추 300여 호가 모여 있고 그중 32동이 초가다. 지난해에는 금당실은 물론 전국 각처를 돌며 모두 70여 동의 초가를 이었다.

시장조사를 해봤다. 볏짚의 국내 수급 상황, 초가 전문가 숫자, 각종 민속촌, 대하사극 세트장에 등장하는 초가 관리 실태 등. 그 과정에 상당수 초가가 정통이 아니라 짝퉁이라는 걸 절감한다. 금당실마을을 한국 초가의 메카로 만들자고 다짐한다.

2010년 10여 명을 규합하면서 노원균 등 솜씨 좋은 어르신을 멘토로 영입해 기술을 전수한다. 3칸 초가에 이엉을 올리려면 볏짚이 300단 이상 필요하다. 평균 하루 1~2동 정도 커버할 수 있다. 이엉은 매년 11월 중순부터 한 달 남짓 이어진다. 현재 바우 정예 멤버는 박노경, 최성열, 김영구, 권오혁, 강건모, 안진만, 박정희, 민병현, 이상대, 신현민, 김원덕 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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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루를 더욱 보강하는 용마름 작업. 〈사진제공=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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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엉을 올리기 위해 해묵은 짚을 걷어내는 작업. 〈사진제공=바우〉

◆초가 이엉 교체 작업

볏짚으로 이엉을 엮고, 그걸 돌려가며 지붕을 덮고, 새끼로 묶은 뒤 마지막에 용마루에 지네처럼 생긴 이엉으로 용마름을 하면 초가 이엉 올리기는 끝난다. 볏짚 길이는 길어야 하며(80㎝ 이상) 대공은 가늘어야 한다. 10여 년 전 볏짚 가격이 200평당 2만원 하던 것이 현재는 8만~10만원.

벼를 추수하고 남은 짚을 일정한 부피로 손으로 묶고 건조하기 위해 대략 일주일 이상 맞세워 놓는다. 이때 20여 명의 인원을 투입해서 눈비가 오기 전 이른 시간 안에 묶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경북 북부지역에선 대부분 70대 전후의 여성들이 묶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인건비는 10여 년 전에 3만5천원 하던 것이 현재는 9만~10만원.

논에서 건조된 볏짚을 트럭과 트랙터를 이용해 작업공간으로 옮겨 바닥에 층을 지어 건물 1~2층 높이로 가려 둔다. 운송까지 완료되면 초가 작업의 50% 이상 진행된 것이다. 볏단 7~8단 정도로 이엉 하나를 완성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엮는다. 1인당 하루에 평균 13개 정도를 엮는다. 완성된 이엉 길이는 약 8m.

초가는 볏짚으로 엮은 이엉과 볏짚으로 꼰 새끼줄, 이는 모두 생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기존에 습하고 썩은 이엉은 걷어내고 새것으로 채워나간다. 전체 경사도를 주면서 아래 처마(평고대)에서부터 이엉을 돌려 가며 용마루까지 올린다. 경사도를 봐 가며 작업하는 것이 '물매잡기'다. 이엉을 돌리며 꺼진 곳이 있으면 그곳엔 이엉을 더 채워가며 작업을 한다. 물매잡기가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각기 다른 지붕의 상태를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오랜 경험과 우직한 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습하고 썩은 곳을 걷지 않고 작업을 하게 되면 그곳은 아래에서 습기가 올라와 시간이 지나면서 여지없이 골이 지게 된다.

◆초가가 잘 썩는 이유

지붕 공사 시 산자를 엮고 알매 흙 작업을 하는데 이때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즉 지붕에 강회다짐을 함에 있어 경사도를 기와지붕에 맞춰 작업함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초가지붕은 볏짚의 결을 따라 빗물이 잘 흘러 내려오게 경사를 잡아야 하는데, 이를 '물매'라 한다. 물매를 잘 잡지 못함에는 이유가 있다. 대다수 초가 시공 시 기계이엉과 전통 손이엉을 사용할 수 있는데 현재 전국 대부분 초가 작업은 기계이엉을 사용한다. 손이엉은 기계이엉보다 하루 생산량이 현저히 적으나 매듭의 두께가 4배 이상 두껍다. 무엇보다 기계이엉 생산이 워낙 수월하니 다들 편리한 기계이엉을 선호한다. 지붕물매를 잘 잡고 위의 문제점 해결과 제때 초가 시공만 잘 한다면 초가지붕에 빗물이 새는 경우는 없다.

◆초가 작업의 어려움

초가 이엉작업에 합당한 볏짚을 구하기가 힘들다. 초가용 볏짚은 길어야 하며 대공이 가늘며 질긴 것이 좋다. 그러나 요즘은 볏짚이 길면 가을 무렵 태풍이나 벼의 무게로 인해 쓰러지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벼를 짧고 대공이 굵은 종자로 개량하고 있고 그러한 종자를 보급하고 있다. 어느 지역에선 초가용 볏짚을 일부 수입을 하기도 한다.

제대로 전통초가 작업을 이어가려면 정부에서 추청, 선진벼 등 키가 큰 종자를 엄선, 29만7천㎡(9만평) 이상에 심어야 된다. 그렇게 넓은 면적은 아니다. 예천군 관내에서도 그 넓이는 감당할 수 있다.

장마철, 벼가 쓰러지거나 하면 보험처리 방법도 생각해 봐야 한다.

종일 앉아서 손으로만 하는 작업이라 무척 힘들다. 여러 달을 수작업 하다 보면 관절염 등 손가락에 무리가 온다. 특히 전통초가에 매진하는 일꾼들에게 긍지와 혜택을 주어야 된다. 현재 문화재청은 초가 전통 계승 문제에 대해 공감은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큰 힘을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우와 같은 군소 업체는 전통 수리보수업체한테만 자격이 주어진 입찰제에 참여할 수가 없다. 자연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이어가야 하니 일꾼에게 주어지는 수익은 턱없이 낮을 수밖에.

예를 들어 팀이나 개인에게 전통 초가공의 인증서를 주거나 원활한 작업 수주로 보다 큰 수익을 보장해야 된다. 기계로 만든 이엉과 전통방식의 이엉으로 만든 초가의 견적에 차이를 두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전통초가의 공사수주를 입찰제가 아닌 지역책임제를 도입하여 공사수주의 과정을 단축해 그 지역의 초가지붕을 책임지게 하면 지역 초가공들에게 좀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될 수 있다.

◆초가 작업의 시정 제안

초가를 지키기 위한 벼 종자를 길러야 한다. 전통 초가 시범마을이 필요하다. 초가에 합당한 시방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제대로 된 초가 시방서가 없다. 보존 가치가 있는 초가는 순수 전통방식으로만 작업이 되어야 한다. 초가 작업은 입찰제가 아닌 책임제로 되어야 한다. 초가지붕 알매를 점차 초가에 맞는 형태로 다시 작업해야 한다. 와가 형태로 되어 있는 지붕 형태로는 물흐름이 원활치 않아 지붕에 골이 져서 쉽게 썩는다. 전통초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연령을 낮춰야 한다. 전국 초가 작업자의 현재 평균연령은 70대 이상이다. 앞으로 전통 초가를 10년이 아니라 100년 이상 지켜 나가려면 초가 장인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소양 및 자긍심을 고취하면서 젊은 층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초가이엉사관학교와 초가문화진흥원 정도는 생겨야 된다. 010-3234-2238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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