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조합원의 마음

  • 최성길 고령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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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16 07:46  |  수정 2023-01-16 07:48  |  발행일 2023-01-16 제24면

최성길(2018년)
최성길(고령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10년 전 필자는 현금을 살포한 후보자를 현장에서 체포한 경험이 있다. 당시 당선이 유력한 현직 조합장이었는데 왜 굳이 돈 선거를 하냐고 물었더니 "돈 안 쓰면 떨어진다. 돈을 바라는 조합원이 의외로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사건은 후보자들이 한데 모여 공명선거 결의대회를 개최한 당일 밤에 벌어진 일이어서 필자를 더욱 씁쓸하게 했다. 돈 선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농한기에 조합원의 손에 쥐어진 몇십만 원은 쏠쏠한 용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돈을 써서 당선된 조합장의 행보가 어떨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돈으로 당선된 사람이 조합원의 이익환원 증대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수백억 원에 달하는 조합의 자산을 조금의 사심 없이 건전하게 운용할 수 있을까.

돈을 써서 당선된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까. 나아가 다음 선거 자금을 4년 재임 중에 마련하기 위해 '딴 주머니'를 차려는 속셈을 품지 않을까.

선거 때 받은 돈은 건전한 조합 경영을 통해 조합원이 환원받을 수 있는 미래의 이익을 당겨 받는 '조삼모사' 격의 자금일 뿐이다. 정직한 선거로 당선된 조합장이라면 오롯이 조합 운영에만 신경 써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조합원에게 돌려줄 텐데, 그렇게 본다면 선거 때 당겨 받았다고 좋아했던 그 용돈이 조합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손해가 아닌가.

심지어 그 조합장이 당선무효가 되면 재선거 비용 또한 고스란히 조합원의 주머니에서 부담해야 한다. 돈 선거가 발생해 '사고 조합'으로 낙인이 찍히면 조합 중앙회에서 받을 수 있는 무이자 지원금 등 각종 혜택도 사라지게 되고, 이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조합일수록 치명적인 타격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경제적으로만 따져 봐도 얼마나 큰 손실인가.

한편으로는 검은돈을 받은 사실을 떳떳하게 신고하지 못하는 풍토가 자못 안타깝다. 어떤 이는 조합원에게 돈을 쥐여 주고선 "이거 신고하면 니도 50배 과태료 물어야 된데이"라며 겁을 줘서 신고를 못 하게 옭아매려고 한다. 그래서 신고도 못 하고 선거 내내 전전긍긍하는 유권자의 가슴앓이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록 과태료 제도가 있긴 하지만, 우리 법은 선의의 피해자까지 처벌하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금품을 받은 사람이 자수하면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해 주며, 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 준다. 최대 3억원의 포상금도 익명으로 수령할 수 있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금품을 받는다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마음 편히 선관위의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지난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들이 태극기에 아로새겼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를 기억하는가. 다가올 조합장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은돈에 결코 현혹되지 않는, 조합원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돈 선거는 우리 조합을 병들게 하는 지름길이고, 조합원의 신고·제보는 신뢰받는 조합으로 거듭나는 시작점이다. 10년 전 현행범 체포 사건도 사실 조합원의 제보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의 조합은 조합원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조합장 선거, 이제는 돈 선거와 당당히 이별하자.

최성길(고령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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