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오의 한국현재사] 2·28 민주운동의 전국화를 바란다면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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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3 06:45  |  수정 2023-02-03 06:51  |  발행일 2023-02-03 제22면
3·15의거나 4·19에 비해
주목 못받은 2·28민주운동
전국화를 원한다면
기념조형물 만드는 것보다
학생들의 정신 계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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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인류 역사 이래 이런 강압적이고 횡포한 처사가 있었던고, 근세 우리나라 역사상 이런 야만적이고 폭압적인 일이 그 어디 그 어느 역사책 속에 끼어 있었던가?" 63년 전인 1960년 2월28일 경북고 학생들이 발표했던 결의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기서 횡포한 처사이며 야만적인 일이란, 바로 일요일에 강제로 등교시킨 것이었지요. 학생들은 '살기 위해 만든 휴일을 뺏기고 죽어야 하느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4월부터 새 학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3학년은 입시를 치른 뒤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봄 방학도 곧 다가오는 시기였어요.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은 27일의 자유당 지원유세에는 학생들을 동원하고, 28일의 민주당 후보 유세에는 참가를 막으려 했습니다. 일요일에 등교했다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경북도청 앞에서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을 당해 200여 명이 연행되었어요.

그날 현장을 목격한 시인은 '책이 짓밟히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경북여고와 대구여고 학생들도 별도로 100여 명이 시위를 벌여 30여 명이 체포되었지요. 경찰은 학생들이 북한 간첩이나 민주당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몰고 가려 했습니다. 전날 헤어지면서 "철창에서 만나자" "천당에서 만나자" "살아남으면 화전민이나 되자" 하며 주동 학생들이 비장하게 악수를 나눈 이유를 알 수 있어요.

당시 대구는 반 이승만 정서가 강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1955년에는 '학도를 정치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실었던 언론사가 습격당했지요. 1956년에는 개표부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고, 민주당의 장면 후보를 압도적으로 밀어 당선시킨 고장이었습니다.

대구 언론은 다음 날 '학생들의 행동은 정의로운 역사의 흐름이기에 의젓하고 떳떳한 것'으로 평가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김윤식 시인의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을 과감하게 지면에 실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을 하루 만에 석방한 것도, 시민들의 성원을 목격한 경찰이 시위가 더욱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고등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는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어, 전국에서 개최된 3·1절 기념식에서는, 여러 곳에서 '3·1정신 받들어 대구학생 성원하자'라는 전단이 뿌려졌습니다. 3월5일 서울에서 열린 장면 후보의 유세 직후, 학생 1천여 명이 종로 일대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어요. 대전, 수원, 부산 등을 거쳐 다시 서울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 3월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2·28민주운동은 3·15의거나 4·19혁명에 비해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사상자나 공공기관에 대한 공격이 없어, 피해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기념사업이 늦게 시작되었던 것도 큰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기념사업회가 처음 구성된 것은 30년이 지난 1990년이었으니까요.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대통령이 직접 행사에 참석한 것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2018년이었습니다.

진정으로 2·28민주운동의 전국화를 원한다면, 대구 시민들이 그 가치를 잘 알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지 기념 조형물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횃불같이 일어나 민주혼의 신념을 불 지펴서, 타오르는 젊은 함성으로 독재의 어둠을 밀어냈던' 학생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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