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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1890년 2월10일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태어났다.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파스테르나크는 흔히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러시아 혁명을 은근히 비판한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작가에 선정되지만 정부 압력에 밀려 수상을 거부한다.
파스테르나크의 그러한 행동은 주인공 지바고의 직업이 닥터라는 데서 이미 예견되었다. 닥터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의사를 가리키는 반면 러시아에서는 군의관을 의미한다. 군의관은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직업이다. 실제로 '닥터 지바고'는 크렘린 궁성 앞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학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어린 지바고가 충격에 빠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닥터 지바고'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 사람의 삶을 부초처럼 파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사회의 거대한 세파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기 짝이 없는 개인을 모래알처럼 간단히 휩쓸어버린다. 전쟁과 폭압 정치 아래에서 인간이 겪는 지독한 비인간화의 참상을 소설은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설 중에는 최인훈의 '광장'이 그와 닮은 독후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닥터 지바고'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광장'은 그로부터 60년 이상 경과한 오늘날의 한국 독자에게도 큰 충격을 준다. 주인공 이명준은 부조리로 가득한 남한을 탈출해 월북한다.
하지만 통제와 강압으로 얼룩진 북한도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쟁 포로로 수용되어 있다가 풀려날 때 이명준은 남북 둘 다 거부하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중립국으로 가는 도중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두 소설은 결과만 보면 독자를 허탈감에 빠뜨린다. 물론 파스테르나크와 최인훈이 그런 작의에서 창작의 골머리를 앓은 것은 아니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하면 최악의 인간에게 지배당하게 된다고 했다. 비록 지바고와 이명준처럼 삶을 마감하게 될지라도 사람은 정치에 건강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플라톤이 그런 촌철살인을 남긴 때는 벌써 2천400여 년 전이다.
최인훈의 '광장' 1961년판 서문도 플라톤의 교훈을 담고 있다. "이명준은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는 늘 현장에 있으려고 했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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