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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지하공간으로 이어진 계단. |
개방감 떨어지고 단조로운 대구 지하
2·28공원·중앙로역 지하 층고 낮아 폐쇄적
일직선상 늘어서 있는 점포들 식별성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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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애나미술관-지하전시실에서 올라와 만날수 있는 지상의 대기실. |
쾌적함·안정감 공존 코펜하겐 지하
'루이지애나미술관' 지상·지하 리듬감있게 연결
현지 공항도 지하철과 연계해 편의 극대화
얼마 전 2·28기념중앙공원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공원을 지나 지하상가의 단골서점을 찾았다. 가장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곳, 무더운 여름엔 시원하고 매서운 겨울엔 추위를 견뎌낼 수 있는 곳. 전쟁이나 재난에 대피할 수 있는 지하상가. 지상에서 내려가는 출입구는 지하상가 전체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첫인상인데 공원에서 내려가는 지하상가의 출입구는 처마가 없어 눈이나 비가 올 경우 미끄럼과 오염에 대한 불편함이 예상되었다. 공원은 여러 설치물과 구조물이 차지하면서 공원이라기보다 공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2·28공원이 갖는 대구의 역사적 가치와 시민의 휴식처라는 자긍심을 일으키기에는 많이 아쉬운 공간이었다.
2·28공원을 기획하고 조성한 분들께는 섭섭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느끼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함께 밝힌다. 필자가 알고 있는 현대도시에서 지하공간 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은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RESO의 지하상가이다. 매일 50만명 이상의 사람이 이용하고 도심 사무공간의 80%, 상가공간의 35%를 연결하면서 안전하고 쾌적한 지하도시공간의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지상 또는 지하만 생각하였던 단편적인 사고를 지상과 지하의 통합디자인을 통해 도시가 가지는 다양성을 확보하고 도심의 구심적인 역할을 충분하게 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지상과 연계된 지하상가의 공간 디자인은 훌륭하였고 아울러 세계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함에 기여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아직 우리나라는 지하보다는 지상으로 솟구치는 개발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대구는 천과 강을 끼고 있으면서 지형 지세가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높이 솟구치기만 하는 건물들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에너지 측면에서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지하의 공간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내려 지하상가로 이어지는 길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원색적이고 큼지막한 광고문구가 한 아름 되는 기둥에 포장이 되어 어지러이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동성로에서 지하상가로 내려가는 출입구는 처마가 있어 다행이나 지하상가의 층고가 낮아 심리적 폐쇄감이 들었다. 지하상가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역시 개방감이 부족하였다. 천장이 상대적으로 낮아 심리적 부담감을 받았고 지상의 채광을 지하로 끌어들이는 디자인은 보이지 않았다.
지하상가의 길은 일직선으로 자칫 지루함이 있었고 각 점포의 식별성은 떨어졌으며 이동하는 동선에 따른 시선의 기대감은 부족하였다. 점포마다 개성은 있으나 통일성 속에 다양성이 아쉬웠다. 지하상가의 인테리어가 지상의 점포나 백화점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지하상가만의 고유한 장소성이 반영된 공간디자인이 아쉬웠고 지하라는 차별성이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음에도 활용되지 못하니 이 또한 안타까웠다. 어설프게 따라 하는 인테리어는 스스로 자충수를 두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했다.
결과적으로 백화점과 전통시장의 장점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의 부재가 아쉬웠다. 기후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시장같이 길에서 즐기는 쇼핑의 재미가 있는 지하상가가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인지 몰라서 못하는 경우일까? 아님 알면서 실행을 못 하는 걸까? 지하상가만의 매력은 충분한데 이를 디자인화하지 못하니 더더욱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들었다. 물론 형태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과 콘텐츠의 디자인도 함께 병행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지하상가는 대구시민의 공공재산이다. 개별적으로 분양할 수 없는 공공재로서 대구시민이 가꾸어 가야 하는 책임이 있다. 지하 공간이라는 특수성의 제약이 있지만 미국의 도시 건축가 케빈 린치가 주장한 도시 이미지의 다섯 가지 요소 통로, 가장자리, 구역, 결절점, 랜드마크 모두 적용될 수 있는데 그 요소마다 적절하고 적합한 디자인이 반영된다면 시민에게는 즐겁고 유쾌한 길이고, 장사하는 분들에겐 장사가 잘되는 충분히 훌륭한 공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특히 재료와 색채, 조명을 달리하는 단순한 디자인이 필요해 보인다.
학부 때 대한민국 건축대전에 서울 역사 앞의 빈민가를 지하 8층의 건물로 제안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목은 'Principle of the second man'이었는데 서울역에 내렸을 때 병풍 같은 건물로 둘러싸여 위요감을 느낀 서울의 첫 이미지에 실망하여 남산 축을 따라 지금의 벽산125 건너편 대지엔 지하 8층을 두고 지상으로는 남산이 보이는 산허리 정도 건축하는 디자인을 제안하였다. 순수한 의도였고 지금은 수십 층의 건물이 남산의 시야를 막고 서 있지만, 그 당시 계획에는 지하 8층까지 다양한 상가와 문화시설이 지하철과 서울역을 연계하는 프로그램으로 제안하였다. 머잖아 서울역도 지하로 들어갈 것이고 지상은 공원과 보행로로 이용되며 광장의 기능도 살아날 것이다. 인근의 용산공원과 연계하여 한강까지 녹색의 축이 이어진다면 서울의 도시는 정말 멋들어진 세계적 명품 도시가 될 것이다.
세계는 위로 치솟는 건물보다 지하공간의 안정적 환경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수년 전 다녀온 코펜하겐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지하의 전철과 연계가 되어 아주 편리했고 도시는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루이지애나미술관은 지상과 지하를 리듬 있게 연결하며 펼쳐지는 공간과 경관은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의 장소가 되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근래에 다녀온 지하공간, 지하상가에 대한 몇 가지 조언과 팁을 단다면.
첫째, 지하공간은 튼튼하고 안전하며 피난에 용이해야 한다. 지하공간이 부실하면 지상에 지어진 건축물과 구조물은 위험해진다. 지하의 굵은 기둥은 구조적인 필수요소이다. 한 아름이 넘는 기둥은 큰 나무둥치처럼 우람하다. 그나마 공간이 확장되는 결절점에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과묵한 설치물과 가뜩이나 굵은 기둥에 어지러운 플라스틱 간판으로 덧댐을 하여 더 뚱뚱하게 보이게 하고 있어 광장이라는 이름은 너무 과한 포장이었다. 갑갑한 지하상가를 더 갑갑하게 만드는 디자인이 너무 속상했다. 더군다나 그 한복판에 어설픈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은 틈새나 구석으로 떠밀려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이 주는 효과는 소음을 줄이고 실내의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과 심미적인 여유도 준다. 그렇다면 굳이 중앙에 자리 잡아 놀부처럼 심술부리듯 버티게 하지 말고 기둥을 이용하여 물이 흐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사족을 붙인다면 시민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화면을 두어 지상의 환경변화에 대해 인지하여 지하에서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하면 좋겠다. 정신없이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다가 미어캣처럼 지상으로 올라오면 어리둥절하게 된다. "어, 밖에는 눈이 오네" "벌써 깜깜해졌네" 등의 기후나 시간을 몰라 당황하는 적을 왕왕 겪는다. 또한 모니터가 지상의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지하상가의 입점주들이 홍보나 행사를 알릴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또한 화재나 재난 발생 시 가장 효과적인 피난통로를 알려주는 가이드 라인의 기능을 갖추도록 하면 어떨까?
둘째, 지하공간의 취약점 중의 하나는 환기와 습기이다. 지금은 기술이 좋아서 강제 배기를 하여 환기를 하지만 1863년 세계 최초로 지하에 전철이 다니게 되었을 때는 석탄 때는 연기를 마셔가며 출퇴근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950만명의 런던시민이 시커먼 연기를 마시며 출퇴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습기는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곰팡이까지 번식하게 한다. 재료의 사용 측면에서 습기를 머금는 구운 벽돌은 화기에도 강하고 미관상 인간적인 스케일을 갖고 있어 추천하는 재료이다.
셋째, 프로그램과 콘텐츠이다. 물건만 파는 장사의 프로그램이 전부라면 얼마나 지루하고 밋밋할 것인가? 150여 곳의 점포 중에 한두 곳은 시민에게 내어놓아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자주적(自主的), 자발적(自發的)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기회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집으로 비교한다면 툇마루나 평상, 마당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고 마을에 견주자면 '성황당' 같은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 방송, 전시, 공연, 소모임 등의 공개 프로그램이 가능하도록 한다면 홍일점이 되어 지하상가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넷째, 미래지향적이고 지속적인 공간, 시간의 운용이 필요하다. 지하상가는 급변하는 작금의 시대와 발을 맞추지 못하면 쉽사리 슬럼화되거나 비활성화되어 천대받기 쉬운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하상가만이 갖는 다양한 교통망과 보행로의 편리한 접근성, 기후변화에 방해받지 않는 아날로그적 공간과 로봇과 챗봇의 안내와 설명으로 이어지는 디지털의 프로그램은 지하상가의 새로운 이면을 선보이게 할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경제적 약자의 공간이기도 하였지만 미래의 에너지와 IT, 인공지능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선진화, 디자인화되어야 할 것이다.
직선의 상가배치, 유사시설의 밀집으로 인한 소비자의 선택은 소외되고, 시설의 노후화와 지루함은 지하상가의 아이덴티티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 2011년 약령시 문화거리 조성연구 용역을 할 때 접목했던 아이디어 중에 IT를 접목한 간판디자인과 거리의 다양성을 살리는 상가 입면의 디자인, 축제나 행사 때마다 변형되는 거리의 모습을 응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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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필자가 강조하는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 되기 위해선 선(線)의 질서가 맞고, 형태(形態)의 비례가 맞고, 재료(材料)를 고급으로 사용하였다고 되는 곳이 아니다. 누구나 외갓집을 그리워하는 것은 초가집이 아닌 외할머니가 계신 집이기에 그리운 것이다. 즉 외할머니의 정서가 깃들여 있는 곳이어야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RESO는 그만의 멋이 있고 이야기가 있듯이 대구의 지하상가는 대구시민의 정서와 이야기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담아야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대구의 지하상가는 대구시의 공공재이면서 입주상가의 이익도 보장하는 사익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앙로역에서 2.28공원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결절점에는 큰 서점이 있고, 영화관도 있고, 대구의 대명사인 동성로도 만나게 된다.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는 다양한 시설은 이 거리를 풍요롭게 한다.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a30co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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