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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
형사법정에 서는 사람에게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엄지척'을 한 '이상한' 국선 변호사의 일화를 읽었다.(몬스테라 저, '국선변호인이 만난 사람들') 산에서 칡을 캐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60대 남자가 산과 시장을 오가는 도구가 오토바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륜자동차 운전면허를 딴 적이 없었다. 고아로 자라 어릴 때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해 한평생 글자를 못 읽어 면허 딸 엄두를 못 냈다. 생계를 위해 오토바이를 계속 타다 보니 무면허운전 전과가 빼곡한 삶이 된 것이다.
책의 저자는 '다른 전과는 전혀 없는' 점에 주목하며 그가 "돈이 없어서 과자와 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남의 음식을 훔치지 않았다"면서 "부유하고 지적이지만 남의 것을 탐하거나 다른 사람의 피해에 무감각했던 사람보다 그가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썼다. 구술시험으로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이번 기회에 꼭 면허를 따겠다고 약속했다는 전언과 함께.
범죄자를 일상으로 만나는 국선변호 일을 하면서 그를 동종 범죄를 반복하는 전과자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는 '다른 시선'이 신선했다. '범죄자지만 훌륭한 사람'을 나는 만나본 적이 있던가 생각하다 문득 그가 떠올랐다. 스물한 살의 그는 이른바 '보호종료 아동' 출신이었다. 부모가 있긴 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부모와 헤어져 보육원에서 자랐고,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나온 후 주변의 도움으로 허름한 원룸임대 빌라를 얻어 혼자 살았다.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형이 만만한 그의 집을 자기 멋대로 들락날락하며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이 문제가 되어 형사법정에 섰고, 내가 그의 국선변호를 맡게 되었다. 동네 형과 달리 그에게는 아무런 범죄경력도, 수사 내역도 없었고, 심지어 소년보호처분조차 하나 없었다. 생활기록부에는 산만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고 살아온 건 분명해 보였다.
물론 보육원에서 생활했다고 소년보호처분 전력 한두 개쯤 있는 게 당연하다는 건 결코 아니다. 어떤 범죄든 결국은 본인의 책임이지 주변 탓을 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모와 가정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지낸 삶과 비교하면 분명 범죄의 유혹에 훨씬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이지 않을까. 나는 그가 그런 환경에서도 이 사건 전까지는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잘살아왔다고, 이 범죄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를 구한다고 변론했다. 하지만 그의 집을 범죄 장소로 이용한 동네 형이 저지른 죄가 중범죄였기에 그도 중형을 면치 못했다.
형이 확정되어 교도소에 가 있는 그에게 그를 생각나게 한 '이상한' 국선변호인의 책을 보냈다. 책의 저자가 필명으로 사용한 몬스테라를 소개하는 부분이 그에게 가 닿기를 바랐다. "몬스테라는 자라면서 잎이 찢어지고 구멍이 생기지만, 누구도 그래서 몬스테라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도 마음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잎이 찢어지고 구멍이 있어서 그 자체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몬스테라처럼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찢어지고 군데군데가 구멍투성이였을 삶을 그럭저럭 견뎌 온 그에게, 수형생활을 통해 죗값을 치르고 분명 더 책임감 있는 몬스테라로 성장할 그에게 '엄지척'을 해주고 싶다.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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