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중요한 것은 액션보다 마음, '길복순'

  •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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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07  |  수정 2023-04-07 06:54  |  발행일 2023-04-07 제22면
길복순 영화 관전포인트는

각자 비밀있는 모녀의 갈등

모녀간의 불가능한 유대가

가능으로 바뀌어가는 과정

초점두고 관람하면 좋을 듯

[윤성은의 천일영화] 중요한 것은 액션보다 마음, 길복순
윤성은 영화평론가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최초로 상영되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감독 변성현)이 드디어 대중 앞에서 베일을 벗었다. '길복순'은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톱무비 3위에 올랐고, 점점 더 많은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해외 평단 및 온라인 시사로 영화를 먼저 만났던 국내 기자들의 반응을 통해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지만, '정이'의 연상호 감독처럼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던 감독의 작품이 아니기에 의미가 더 크다. 또한 극장가에 나도는 한국영화 위기론과는 별개로 글로벌 OTT에서는 여전히 K-무비가 주목받고 있음을 입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이하 '불한당')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만큼 재능 있는 감독이다. '불한당'은 미학적인 영상과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누아르였고, 전작인 '킹메이커'(2021)도 실화를 바탕으로 두 정치인의 캐릭터를 밀도 높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불한당'과 '킹메이커'가 각각 범죄조직과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남성 중심의 서사였다면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여성의 관계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킬러이자 싱글맘인 길복순을 괴롭히는 회사 상사부터 그녀를 치고 올라오는 어린 후배, 버거운 십대 딸까지 모두 여성이고, 남성들은 이들의 주변부에 존재한다. 심지어 설경구가 분한 살인청부회사 대표 '차민규' 역까지도 물렁하게 느껴지는데, 마지막 액션시퀀스에서 그러한 의혹은 사실로 밝혀진다. 반면 이 영화의 여성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희생하지 않는다. 특히 복순은 사회적으로 민규에게만 허락된 권한, 즉 규칙을 만들고, 깨고, 스스로 규칙이 되는 데까지 나아가는 인물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길복순'은 꽤 특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해석보다 더 흥미로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각자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와 딸의 갈등이다. 복순은 자신이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을 딸에게 말할 수 없고, 딸은 엄마에게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진정한 화해는 모녀가 비밀을 공유할 때 가능하지만, 복순의 비밀에는 윤리적 문제가 있으므로 두 사람의 비밀은 등가가 아니고 맞교환될 수 없다는 데 딜레마가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결국 딸이 비밀을 털어놓고 엄마의 직업을 지레짐작함으로써 표면적으로 갈등이 해소되는 듯하다. 그러나 복순의 회사는 모처럼 찾아온 이 가정의 평화를 깨뜨릴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다. 과연 딸은 엄마가 킬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인가. 거사를 끝낸 복순은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다. '길복순'에서 서스펜스가 최고조에 이르는 부분은 킬러들의 사투가 아니라 이 대목이다.

그러니 복순이 킬러라는 설정 때문에, 혹은 '길복순'을 액션 영화로만 포장한 예고편 때문에 장르를 오해했던 관객이라면 꽤 실망했을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은 생략되어 버리니까. 그러나 엄마와 딸 사이의 불가능한 유대가 가능으로 바뀌어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면 다소 아쉬운 부분은 있어도 야박하게 평가할 작품은 아니다. 추신, 화려한 액션에 목마른 관객은 곧 개봉하는 '존 윅 4'(감독 채드 스타헬스키)를 기대하시라. 이온음료보다 빨리 갈증을 해소해 줄테니.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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