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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 지로 지음/이선희 옮김/다산책방/400쪽/1만7천500원 |
일본에서 출간 즉시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던 아사다 지로의 장편소설이다. 영화 '파이란'과 '철도원'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저자는 이번에도 사람살이의 가장 깊은 곳의 허전함을 찾아내 기어코 눈물을 흘리게 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꿈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시작된다.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탄 다음 비스듬한 언덕을 오르면 그제야 보인다. 아궁이 불의 정겨운 내음이 밴 낡은 시골집 한 채. 그곳에는 인기척이 들리는 순간 "드디어 왔구마!" 외치며 마중 나오는 작고 늙은 엄마가 기다린다. 그런 엄마 곁에서 소박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잠이 든다. 지난 세월의 짙은 독을 모두 녹이는 듯한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이제 다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탈 차례다. 그리고 차분히 전화 한 통을 건다.
"네,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또 예약할 수 있을까요?"
전화 한 통화로 종료된 것은 소수의 VIP만을 위해 카드 회사에서 마련한 대형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명은 '당신에게, 고향을'. 비용만 1박2일에 무려 500만원이다. 보기만 해도 그리운 시골집과 마을 하나를 동원해 고향이라고는 모르는 도시인에게 귀향의 기쁨을 안겨주는 대규모 기획이다. 무엇보다 지친 삶에 더 이상 기대어 울 곳 없는 고객에게 '맞춤형 엄마'를 서비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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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들의 '불편한 귀향'은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른바 생존의 불안이 해결된 이들이다. 딸린 식구도 없다. 직장에서 밥값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끝났다. 하지만 모두 도시에서 태어나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현실에 지친 중장년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 있는 가족이었던 어머니를 잃은 중년의 여의사. 독신으로 살며 식품 기업의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모든 것이 헛헛해지기 시작한 노년의 직장인. 은퇴와 동시에 황혼 이혼을 당한 제약회사의 영업부장.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고독을 마주한 이들은 애써 거금을 주고 불편함을 구매한다. 기차를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가야 하는 먼 귀성길의 불편함. 건강히 잘 지내는지, 외롭지 않은지 걱정해야 하는 어머니가 있는 불편함. 번거로움 속 설렘으로 가득한 그들의 귀향은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고향'이 되어준 산골 마을은 생각만큼 평화로운 곳은 아니다. 인구의 50% 이상이 65세를 넘어 곧 소멸을 앞둔 '한계부락'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일까. 몇몇 이웃만 남은 외딴 마을에서 홀로 넓은 집을 지키는 '엄마'에게서 사라져가는 마을에 대한 불안이나 우울은 찾아볼 수 없다. 텃밭의 흙을 툭툭 털어내고 낯선 자식들을 스스럼없이 보듬는 손길 앞에서 뻣뻣했던 자식들은 어느새 아이가 된다. 그들의 입에서 친엄마에게도 할 수 없었던 하소연이 흘러나오려고 한다. 그것은 고향에서 얻는 깊고 애틋한 안식이다.
'도쿄에서 산다는 것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이 질문을 던지며 이번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어서 와'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매우 행복한 일이다.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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