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메일] 유권자가 아닌 정당이 당선인을 결정하는 선거제도의 운명은

  • 조응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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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17  |  수정 2023-04-17 06:58  |  발행일 2023-04-17 제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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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때마다 전국 곳곳에서 정당과 무관하게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목청 높여 부르는 노래가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이다. 각 당의 '나'번 기초의원 후보들은 상대 당 후보뿐 아니라 같은 당 '가'번 후보와도 경쟁한다. 전국동시지방선거 유권자들은 보통 7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된다. 정당추천 없는 교육감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지 정당을 결정하고 투표소로 나서지만 까다로운 것은 지역구 기초의원 선거다. 선거구별로 2~5명을 선출하는 까닭에 각 정당마다 후보를 복수로 공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호도 1-가, 2-나 식으로 복잡하기 그지없다. 각 정당 공천신청자들에게 정당 기호 다음에 붙은 '가, 나, 다'의 위력은 당락을 좌우한다고 느낄 만하다. 실제 제4회(2006년)부터 제7회(2018년) 지방선거 결과는 '가'번을 받은 후보의 당선율이 80% 내외로 '나'번 당선율의 약 2배에 달했다. 지역구 기초의원은 유권자가 아닌 가, 나, 다 기호를 결정하는 정당이 당선인을 결정한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2006년 기초의원 선거에 도입된 중선거구제는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에 비해 다양한 표심이 반영된다. 유권자의 제2·3의 선택지도 당선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표(死票)가 줄고 지역주의와 양당 중심 정치체제의 대안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가'번 후보 쏠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필자는 최근 기초의원 선거에서 특정 기호와 게재순서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후보자에게 기호를 부여하지 않고 투표용지마다 게재순서를 돌아가며 배열하도록 했다. 후보자들은 선순위를 공정하게 배정받고, 선거결과는 당이 정한 순서가 아니라 오로지 유권자 선택으로 결정될 것이다. 지난주 국회는 20여 년 만에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100명의 의원이 의원 정수 조정, 비례대표제 개혁, 선거구제 개편 등을 두고 다양한 주장을 펼쳤다. 의원들마다 제각각 해법을 제시했지만 그 지향점은 명확했다. '국회의원 선거결과와 유권자의 표심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 현재 국회의원 선거는 최다득표자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이다.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시작된 소선거구제는 거대 양당 체제와 지역주의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28석 중 27석을,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65석 중 56석을 차지했다. 이 선거의 사표 비율은 43.7%였다.

유권자 표심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소선거구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회는 중대선거구제를 논의 중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총선 후보자도 가, 나, 다 기호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자.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유리한 기호를 받기 위해 경쟁하고, 유권자보다는 공천권력에 호소하는 정치를 할 것이다. 선순위에 배치된 후보자는 당연히 당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유권자가 아닌 중앙당에서 부여한 가, 나, 다 순서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것이다. 국회는 선거제 개혁에 앞서 기초의원 중선거구제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당과 공천권자가 당락을 좌우하는 선거제도는 개혁이 필요하다. 정교한 설계 없는 중대선거구제는 또 다른 방식의 선거결과의 왜곡을 가져오고, 후보자 줄 세우기를 통해 정당 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번 선거제 개편은 '나의 대표'를 선출하고 싶은 유권자의 표심을 가장 많이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조응천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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