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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덕<시인> |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주는 창문에는 왠지 좋은 바람이 있고 꿈꾸는 식물들이 있으며, 그리운 무엇이 작동한다. 어릴 적부터 창밖을 좋아했던 필자는 때로는 교실에서, 때로는 옥탑방에서 공상에 빠져 세월을 소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것이 마냥 허망한 시간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창밖에는 보물이 많았다. "방금 빛나는 햇살 속에서 함박눈이 내렸어/ 언제?/ 다 지나갔어// 방금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구름 거인을 봤어/ 언제?/ 다 지나갔어// 제발 수업 시간에 창밖도 좀 봐!/ 언제?// 다 지나기 전에"(동시 '다 지나갔어' 중) 창밖을 동경한다는 것, 그건 때때로 이곳 너머 저곳의 아름다움을 채우고 꿈과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재수와 임용 탈락 등 실패의 연속이었던 필자의 20대 삶에서, 창문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풍경을 소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재산이자 도피처였다.
'창(窓)'이라는 문은 계절마다 피는 꽃과 나무들, 빗소리, 뭉게구름, 새들의 움직임을 향해 언제나 열려있다. 이곳을 통과한 풍경들은 마음속 또 다른 풍경으로 다시 펼쳐진다. 그 매력적 공간성은 움직이는 창문에서 특별하다. 특히 필자에겐 열차가 그랬다. 90년대 중후반 경북 북부지역에서 대구로 유학을 왔던 그 시절, 자주 경북선(통일호,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했다. 지금도 KTX보다는 무궁화호의 속도가 더 정답다. 푸른 하늘 아래 달리는 창문 속 배웅하는 나무와 들판, 다정하게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는 듯한 슬레이트 지붕들은 여전히 평온하다. 휘어지는 철길과 터널을 빠져나오면, 저 구름 너머 염소 얼굴을 한 착한 외할머니, 장난기 섞인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 등 그리움이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경계에 창문은 늘 있다.
창문은 내가 가진 삶의 넓이만큼 존재한다. 창문을 통해 홀로 마주했고 바라봤던 만큼 자신만의 세계가 놓이는 것.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이문재 시, '혼자의 넓이' 중) 오랜만에 현대인의 지나치게 빠른 속도를 좀 늦추고, 창문에 비친 나와 창밖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도 좀 해보고 싶다. 적당한 느림의 보폭을 가진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떠나려 한다. 보물 같은 그림자들과 아름다운 시절이 내 넓이에서 벗어나기 전에. 권기덕 (시인)

권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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