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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논설위원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김춘수의 시 '꽃'의 한 구절이다. 한데 지방정부는 아직 조직과 위상에 걸맞은 명칭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라고? 가당치 않다.
국어사전엔 단체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일정한 조직체'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으로 풀이한다. 이와 달리 정부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을 포함하는 행정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 적시돼 있다. 시·도와 시·군은 집행부, 의회, 지방법원(지원)이 있으니 외양으로도 정부의 얼개를 얼추 갖췄다.
그런데도 광역단체, 기초단체라니. 지방정부가 친목단체나 시민단체·경제단체는 아니지 않나. 지방정부를 단체라 하는 건 어폐가 있을뿐더러 격에도 맞지 않는다. 지방자치제를 도입한 민주국가 중 지방자치기관을 단체로 칭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일본 헌법엔 지방공공단체로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117조·118조 달랑 2개뿐이다. 그것도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표현했다. 법률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중앙정부와 중앙언론에선 '지방정부'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지방자치제가 처음 도입된 김영삼 정부 시절 학계와 지방언론에서 지방정부란 말을 쓰기 시작하자 중앙정부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예 지방정부란 호칭을 자제해 달라고도 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지방정부'가 보편적 언어로 착근되진 않았다. 여전히 '정부'는 중앙정부를 뜻한다. 분권국가의 정석이 아니다. 연방정부·주(州)정부로 구분하는 미국과 스위스가 벤치마크다.
김관용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2017년 경북도지사 시절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개칭하는 게 지방분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2020년 경기도지사 재임 때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추동력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유야무야 됐다.
미국 미시간주 웨인주립대 심리연구팀이 1875년에서 1930년 사이에 태어난 변호사, 운동선수 등 다양한 직업군 1만명을 대상으로 이름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자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73.4세로, D자로 시작하는 이름의 평균 수명 69.2세보다 4.2세나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A자 이름이 학교 성적도 더 좋다는 분석도 나왔다. A하면 A학점, 에이스(Ace) 같은 비교우위의 단어가 연상되는 만큼 이에 따른 피그말리온 효과일 수도 있겠다.
금오공대, 안동대 등 비수도권 13개 국립대의 교명에 '국립'이란 단어를 붙일 모양이다. 교육부는 이들 대학이 신청한 교명 변경을 일괄 허용하기로 하고 국립학교 설치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교명 변경을 신청한 목적은 하나같다. 이름효과다. 국립대임을 널리 알려 대학의 위상과 신인도를 제고하겠다는 포석이다. 지방정부란 명칭 역시 지방정부의 격을 높이는 복안 아닐까.
지방자치단체 명칭이 D자라면 지방정부는 A자 이름에 비유할 만하다. 지방자치단체란 애꿎은 호칭으로 지방정부를 관변단체쯤으로 격하시키지 말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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