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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지음/여우난골/179쪽/9천원 |
2009년 '현대시' 신인추천으로 등단한 이수진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나왔다. 그는 현실이 활력을 잃고 멈췄을 때 그 틈에 시가 등장하는 순간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그는 느릿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이 바닥의 생리는 잘 모르지만/ 이 무리들과 어울리는 데는/ 몸을 바닥에 착 붙여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 데 있다"(시 '강물' 중)라고 말한다.
이번 첫 시집에도 이 시인의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된 풍경이 실려 있다. 그는 독자에게 "우리는 그때/ 죽음을 열망하며/ 마지막 꽃잎 잃을 이마에// 딱밤 새길 생각으로/ 웃음을 긴장시키고 있었다"(시 '우리가 사과처럼 웃을 때' 중)고 말한다. 어떤 순간에 찾아오는 냉소나 환멸 대신 찾아오는 침묵을 놓치지 않는 것이 그의 시작(詩作)의 핵심이다. 이번 시집에도 시인의 언어가 현실을 얼려버렸을 때 그 쪼개진 틈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의 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별에 따른 정한'과 같은 주제를 담고 있어 한국적인 감성이 느껴진다. 이 시집에서 떠나는 님의 형상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떠나는 님'은 '여름'이고, '당신과 나의 시간'이며 '바깥 풍경'이다. 이 시인은 이별의 순간을 담아내는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구체적인 사연은 감춘다. 대신 이 이별의 양상을 보편적 진실의 문제에 접목해 이별의 아픔을 승화시킨다.
이 시인은 시에서 흥미로운 시제를 표현하기도 한다. '근접 미래'로, 현재와 단절된 미래가 아니다. 이는 현재의 문제는 원료로 삼고, 이를 불태움으로써 미래를 조성하는 동사로 나타난다. 그는 근접 미래로서 시제를 행동 자체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념과 의지와 예감을 행동 속에 담는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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