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 꿈 앗아간 '전세사기'] 〈상〉 대구 달서구 진천동 피해사례…"깡통전세에 깡통 찰 판…대출이자 못내 전 재산 날릴 위기"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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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1 07:05  |  수정 2023-06-01 16:57  |  발행일 2023-06-01 제3면
"전세가율 90% 나중에야 알아
보증금 한푼도 돌려받지 못해"
가압류로 경매 절차 들어가도
돈 회수 1년 걸리는 경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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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한 이어말하기'에서 피해자가 발언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유사 사례가 발생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연합뉴스

#1. A씨는 대구 달서구 진천동 '나홀로아파트'에 2020년 3억3천만원의 보증금을 주고 전세로 들어갔다. 2년 뒤인 지난해 A씨는 분양권을 매입했던 새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극한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전세보증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상황에 처한 것. 이 아파트의 소유주인 법인 대표가 몇 달 뒤에 보증금을 돌려준다고 해서 이자를 몇 달 내고 일단 버텨 보려고 했다. 하지만 보증금을 돌려 받을 기약도 없고 대출 이자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새 아파트를 팔고 다음 달에 이 아파트로 다시 들어갈 예정이다. A씨는 "프리미엄(웃돈)을 주고 분양권까지 매입해 새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9개월밖에 못 살았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다 보니 이자 부담이 너무 커 손해를 보고 새 아파트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2. B씨는 2020년 9월 이 아파트에 3억1천만원의 전세보증금을 주고 세입자로 들어왔다. 2년 뒤에 새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었던 B씨는 전세권 설정을 했기에 전세보증금을 떼이지는 않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사온 지 한 달이 좀 넘은 그 해 11월 초. 이 아파트를 지은 시공사가 B씨의 전셋집을 포함한 7가구에 가압류를 걸었다. 소유주인 이 아파트 시행사 법인과 시공사 간 '건물 하자 보증' 관련 건 때문이었다. 당시엔 전세계약 기간 만료까지는 일이 처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지난해 9월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B씨는 "한 달에 대출이자로 170여만 원을 내며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B씨는 지난해 10월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현재 이 아파트의 4가구에 가압류를 걸었고 지난 3월 강제경매개시 결정을 받았다.


고금리에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역전세와 깡통전세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있고,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들도 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석달 새 속칭 '건축왕' 및 '빌라왕' 사건의 전세사기 피해자 5명이 세상을 등지기까지 했다.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대구 달서구 진천동 나홀로 아파트의 전세사기 의심 사건의 피해자 다수는 "전세보증금은 전 재산과 같은 돈"이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또 다른 전세 피해자 C씨는 "다른 세대가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받는다는 것을 알고 이사 가고 싶었으나 어차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1년 연장 계약을 했다"며 연장 계약 조건으로 대출 이자를 월 40만원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C씨는 "연장 계약했던 지난해 11월부터 대출 이자 지원금을 받은 건 고작 두번뿐이다. 그것도 수차례 독촉해서 받았다"고 답답해했다.

이 아파트의 전세 피해자들은 2억8천만~3천4천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전세 계약서에 '전세 기간 만기 시, 현 세입자가 전세자 세 놓고 이사 가기로 약속함'이라는 특약 조건이 달려 있는 세입자도 있어 막막해한다. 올초 이들 전세 피해자 13가구(전세 11가구, 반전세 2가구)는 참다못해 '전세보증금 반환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정보 공유 및 공동 대응에 뜻을 모은 것.

피해자들은 전세로 들어올 당시 전세가격이 상승했고 매물도 귀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한 전세피해 세입자는 "당시 인근 84㎡ 아파트의 전셋값이 4억원대다. 신축인 이 아파트 전세가격이 3억원대다 보니 전세를 들어오게 됐는데 이런 피해를 입을 줄은 몰랐다"고 억울해했다. 다른 피해자도 "당시 임대차 3법으로 전세가 귀했다. 서민들은 빌라, 나홀로 아파트 전세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번 전세 피해는 전세보증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사업자 탓에 빚어진 사기다. 전세 들어온 본인의 책임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임대차 3법, 사기죄 양형 등 그 고통이 과연 피해자만의 몫은 아닐 것"이라고 호소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전용면적 84㎡가 3억원에 매매 거래됐다. 이 기준으론 사실상 깡통 전세인 셈이다. 전세 피해자 D씨는 "우리가 전세 들어올 때 전세가가 분양가의 90% 수준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고도 했다. 이 아파트 시행사인 법인 대표는 "분양 당시 아파트를 3억5천만~3억7천만원 정도에 매매했다. 이후 분양이 안 돼 전세를 놓았다"고 말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전세 피해의 악몽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경매 절차로 전세보증금을 회수하게 되는데, 1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알고 있다. 전세금을 못 돌려받는 세입자들은 고통이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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