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택시협동조합 뚜껑 열어보니…비리·횡령 '온상'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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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05 20:57  |  수정 2023-07-06 07:34  |  발행일 20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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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대구 달성군의 한 택시협동조합 직원 30여명이 달성경찰서 앞에서 조합 이사장의 횡령 및 배임 관련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sylee@yeongnam.com


쇠퇴하는 택시업계의 새 대안으로 떠올랐던 택시협동조합이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법인·개인택시의 장점만 합쳤다며 기대치를 한껏 올렸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미비한 제도와 부족한 규제로 사업자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모양새다. 관리·감독 기관인 대구시도 제도적 한계를 탓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구 달성군 A택시업체 직원 30여명은 지난 4일 달성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갖고, 조합 이사장의 횡령 및 배임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했다. A택시는 한때 운영 택시만 285대에 달했던 대구 최대 택시협동조합이다.

이사장이 출자금 70억 빼돌리고
조합통장 공개 요구 거부해도
제어 수단 없어 市도 발만 동동

탈퇴 희망자들 출자금도 못 받고
조합원 차량 저당 잡히는 등 심각


이들에 따르면 조합 이사장 B씨의 비리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3월이다. 당시 조합은 탈퇴 희망자들에게 출자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택시협동조합은 택시기사들이 모여 일정 금액의 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을 설립, 조합원들이 각자 영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A택시는 탈퇴자에 2천500만원의 출자금을 돌려줘야 했다.

조합 재산 공개를 거부하는 B씨에 미심쩍음을 느낀 조합원들이 등기부 등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조합 내부 사정은 엉망진창이었다. 70억원에 달했던 출자금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28억여원의 빚덩이에 올랐다. 조합원들의 차량은 대출을 위해 저당 잡혔으며, 가스 사용료 수억원도 채납된 상태였다. 수천만원의 코로나19 지원금도 조합원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B씨가 개인 아파트 및 차량 구매 등을 위해 조합 재산을 유용한 것으로 의심했다.

천정기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사장이 조합원 재산을 횡령해 조합이 파탄에 이르렀다"며 "직원들은 석 달째 임금이 못 받고 있으며, 각종 보험·연금도 연체돼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고 주장했다.

달성경찰서 홍인표 수사과장은 "고소·고발이 추가로 계속 들어오고 있고 수사해야 할 내용도 방대하다"며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A택시 외에도 대구에서는 최근 택시협동조합 관련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동구의 한 택시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현금 수입을 조합 통장이 아닌 이사장 개인 명의의 통장으로 받았다가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또 다른 택시협동조합도 퇴사 희망자에 출자금을 돌려주지 않아 말썽을 빚었다.

이처럼 택시협동조합 관련 잡음이 잇따르는 것은 조합 내 불법 행위자에 대해 제도적·법리적 제어 수단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A택시 조합원들은 이사장에 조합 통장 공개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동조합기본법상 조합은 회계장부, 조합원 명부, 의사록, 정관 등을 조합원에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회계장부에 관한 구체적인 공개 범위가 적시돼 있지 않은 탓에 조합이 공개를 거부해도 관리·감독 기관의 개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대구지역 택시협동조합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3곳으로, 등록 택시만 1천여대에 달한다.

윤정희 대구시 민생경제과장은 "현행법상 협동조합 설립은 신고제여서 신고사항의 형식적 요건 충족 시 수리를 거부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며 "일부 조합의 자본잠식 등 부실경영, 불신으로 내부갈등이 발생해도 개별 협동조합의 지자체 감독 권한 부재로 적극 개입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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