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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학 시조집 '뜻밖의 낱말'에선 낱말이 갖고 있는 고유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조를 만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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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학 지음/뜻밖에/128쪽/1만2천500원 |
몇 년 전부터 산문시가 대세다. 시와 산문의 경계선에 서 있는 듯한 산문시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말이 길지 않고, '말의 맛'이 살아있고 운율이 느껴지는 시를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문무학 시인은 바쇼, 이싸, 부손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짧은 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우리말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2009년 우리 문장, 문장부호, 품사를 시로 쓴 시조집인 '낱말'을 펴냈다. 2016년 우리 정형시 시조의 종장 '3/5/4/3'의 15자를 기본으로 삼은 시를 수록한 시조집 '홑'을, 2020년 한글 자모를 소재로 시를 쓴 시조집 '가나다라마바사'를 내기도 했다. 문 시인이 최근 발간한 시조집 '뜻밖의 낱말'은 앞서 발간한 3편의 시조집에 이어 한글을 소재로 한 네 번째 시조집이다.
총 4부로 나눈 시조집에는 총 80편의 시조를 실었다. 1부 '주소 시편'에는 시인의 몸과 마음, 문학과 정신이 있는 주소를 파악해 있어야 할 자리를 찾고자 했다. 여기에는 촌철살인의 시로 화제가 되었던 '인생의 주소'도 포함됐다. "젊을 적 식탁에는 꽃병이 놓이더니/ 늙은 날 식탁에는 약병만 줄을 선다// 아! 인생// 고작 꽃병과 약병/ 그 사이에 있던 것을…"('인생의 주소')
2부 '뜻밖의 낱말'에선 이번 시조집의 주제를 담고 있는 시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내, 뉘우쁨, 사랑, 봄날봄길, 버섯, 흥청망청, 절경, 얼핏, 꿈꾸다, 착하다 등 45개 낱말을 바탕으로 쓴 시들이다. 여기선 각 낱말이 담고 있는 고유의 의미 밖에서 낱말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기다림'이란 글자는 잘 찍힌 사진 같다// 그 무얼 기다리느라/ 목을 저리 빼 드는지// 맨 끝의/ '림'자는 글쎄/ 디딤돌도 디뎠다"('뜻밖의 낱말·20-기다림')
3부 '문장부호 시로 읽기'에선 문장부호를 시조로 만든 것으로, 이전 시조집 '낱말'에서 문 시인이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어어문규범에서 변경된 것이 있는 경우, 이를 반영해 개작해 실었다. "빗금은 비가 긋는 빗줄기의 이름이다/ 시의 행 이어 갈 때 슬며시 끼어들어/ 빗소리 연상하라고 비스듬히 누웠다"('문장부호 시로 읽기·16-빗금(/)' 중에서)
4부 '시인이 겪은 코로나 열아홉 고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바뀐 삶을 되돌아본 19편의 시조를 소개한다. 코로나로 벌어진 사람 사이 틈을 조금이라도 좁히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을 담았다. "마스크 꼭꼭 쓰고 살아야 하는 까닭/ 어쩌면 비말飛沫 아닌 비非말 때문 아닐까/ 거짓말/ 흰소리들이/ 횡행하고 있으니// 하늘이 듣다 보니 좀스럽고 민망해서/ 그만 좀 하라고 입부터 막고 보자/ 그 대책/ 바로 세운 게/ '마스크 쓰GO'아닐까// 흰소리엔 흰 마스크 거짓말엔 검은 마스크/ 흰 것이 검어지고 검은 것이 하얘져야/ 마스크/ 벗어던지는/ 그런 날이 오겠지"('비말')
문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조를 쓴 기간은 암담과 변화가 태풍으로 몰아쳤던 시간"이라며 "코로나19는 '암담'이란 말보다 훨씬 더 캄캄했고, 그 캄캄한 속에서 변화는 '급변'이란 말보다 엄청 더 빨랐다. 암담과 급변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 그 벌어진 틈을 이 시집이 0.1㎜라도 좁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 턱없는 꿈을 꾸면서 이 시집을 묶었다"고 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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