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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훈 문화부 선임기자 |
대구의 여름 날씨는 무덥다. 대구예술발전소가 9월17일까지 선보이는 '예술가의 편지전' 속 편지글에서도 대구의 무더위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1985년 8월 부산의 작곡가 이상근 선생이 제자인 임우상 작곡가에게 보낸 편지에는 '살인적인 대구 기후에 어떻게 지나시오?'라는 안부 인사가 있을 정도로 대구의 여름 더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게 무더위는 지역민의 삶을 보여주는 주요 상징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 더위를 표현하기 위해 최근 즐겨 사용하는 특정 단어는 기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 단어는 수년 전부터 유행처럼 쓰이는 '대프리카'다. 이는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것으로 '대구가 아프리카처럼 매우 덥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내가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한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매우 불쾌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중국과 일본의 관습 및 가치를 범아시아적 보편성으로 여기는 서양인들에게 화난 한국인의 심정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일단 엄청난 크기의 대륙과 한 도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렇다. 아프리카 대륙은 인류의 발상지이자 아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큰 대륙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구성하는 나라만 50여 개 국으로, 다양한 역사적 전통 아래 각자의 문화를 영위하고 있으며 그 인구도 10억명을 넘는다.
아프리카의 날씨를 '무더위'로만 정의하는 것도 난센스다. 적도가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부를 지나긴 하지만, 북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일원의 상당수 국가는 대한민국과 같은 온대기후를 누린다. 또한, 북아프리카 국가 상당수는 우리가 '중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아랍문화권의 일원으로 사막 기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프리카'라는 단어 속에서 '열대 우림 속 무더위'만 떠올린다. 이는 대항해시대 이후 서구 열강들이 비유럽 대륙을 바라보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당시 서구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그저 정복해야 할 미개한 곳으로만 여겼다. 그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고 신대륙의 플랜테이션 농장에 팔아치우며 부를 축적했다.
아프리카의 상당수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개발 국가로 전락한 배경에도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배가 있다. 당시 유럽의 주요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멋대로 아프리카 대륙을 분할 통치했다. 역사적 배경과 부족 구성원, 지형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어진 당시의 국경선은 지금까지도 남아 부족 간 분쟁의 씨앗이 됐으며 상당수 국가는 지금도 내전으로 고통받는다. 이러한 사실을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대프리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대륙이 품은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이미지로만 아프리카를 소비하는 과오를 저지르는 중이다.
물론 기자의 이러한 단상에 대해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든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대프리카'라는 단어의 이면에 옛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다문화를 부르짖으며 외국인 및 귀화인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하지만 다문화와 관련한 현실 속 우리의 자세는 여전히 '글쎄…'다. 아프리카의 아픔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쓰라린 역사와 같다. '대프리카 유감'이다.
임 훈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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