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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욘슨 묄러가 그린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초상화.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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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 지음/손화수 옮김/민음사/540쪽/1만7천원 |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는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꾸준히 노벨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올려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포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선정 이유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일상적 세월 속에 자리한 이름 없는 존재들, 생과 사의 간극에서 잊히고 스러져 간 이들의 희미한 궤적을 살리는 데 집중해 왔다.
민음사가 최근 노르웨이 뉘노르스크어 원전 번역으로 출간한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Ⅰ-Ⅱ(Melancholia Ⅰ-Ⅱ)'는 그의 작품 중 독특한 위치에 있다. 포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보통 어떤 이름도, 특별한 개성도 없이 범상한 상황 속에서 갈등을 겪으며 삶이라는 부조리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19세기 말 실존한 노르웨이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Lars Hertervig, 1830~1902)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은 지 12년 뒤에야 비로소 주목받았으며, 그는 오늘날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책의 표지는 헤르테르비그가 자신의 고향 풍경인 보르그외위섬을 그린 작품이다.
포세는 이 작품에서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펼친다. '멜랑콜리아 Ⅰ'에는 빛을 사랑했지만, 외롭고 그늘진 인생을 살았던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1인칭·3인칭 시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1853년 헤르테르비그는 위대한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 노르웨이 출신 화가 한스 구데가 교수로 재직한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를 찾는다. 같은 해 가을날 오후 보랏빛 코듀로이 양복을 차려입고 자신의 운명을 결단해줄 구데를 기다리던 그는 돌연 착란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불안과 우울, 편집증적 망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던 그의 앞에 또 다른 운명의 서광이 비친다. 하숙하고 있던 집의 딸 헬레네에게 매료되고 만 것이다. 그의 두 가지 운명은 파국을 향해 전진해간다.
'멜랑콜리아 Ⅱ'는 헤르테르비그가 사망한 해인 1902년 노르웨이 서남단에 있는 스타방에르를 배경으로 한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이자 치매로 고통받는 인물인 '올리네'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허구의 인물인 올리네는 이미 가족 대부분을 떠나보내고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으로 그려진다. 그는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남동생 라스의 모습, 음성 등 모든 흔적을 뒤쫓는다. 현재보다는 과거의 기억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데, 라스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 중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 작품에선 포세가 그의 작품에서 보여준 특유의 짧은 문장과 리듬감 있는 문장을 만날 수 있다. 문장을 소리 내서 읽어보면,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외롭고 그늘진 화가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지만, 문체는 무겁지 않고 간결하다. 이는 헤르테르비그라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도 낯설지 않게 접근하게 한다. 포세는 단어와 문장을 반복하면서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예술가인 헤르테르비그를 서서히 드러내 보인다.
"오늘은 구데가 내 그림을 보고 평가할 테지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구데는 내 그림을 싫어할 것이 뻔하니까. 나는 구데가 내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나는 구데가 내 그림을 두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멜랑콜리아 Ⅰ' 중)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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