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불공정 행위에 단호…韓, 공급망 안정화 전략적 참여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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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07:51  |  수정 2023-12-20 07:53  |  발행일 2023-12-20 제18면
[영남일보-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 공동 기획] 미증유의 'G0(제로)' 시대, 세계시장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1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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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장수현기자 jsh10623@yeongnam.com

올해 4월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중국을 찾았다. 방문의 성격과 세부 일정은 달랐지만 두 정상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서 삼자 회담을 했다. 그런데 중국 방문을 전후해 보여준 두 정상의 행보는 무척 달랐다.

◆폰데어라이엔과 마크롱의 상반된 태도

폰데어라이엔은 명실공히 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수장으로 홍콩과 중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 문제에 있어 줄곧 중국을 비판했다. 방중 직전에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온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귀국길에서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마크롱 대통령은 직접 대만 문제를 언급했고, 유럽이 미국의 추종자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중국이 듣기에 좋은 이 발언은 미국은 물론 유럽 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U 집행부와 회원국 정상의 상반된 행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유럽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분야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무역, 투자 등 경제교류에서는 '협력자'의 입장을 갖는다. 중국 시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핵심산업과 기술에서는 중국을 '경쟁자'로 간주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등 정치에 있어서는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로 본다. 유럽은 이를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전략적 자율성의 확대

전략적 자율성이란 외교·안보 및 군사적 작전 등 지정학적 고려가 필요한 문제에서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선택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용어는 1994년 프랑스의 국방백서에서 처음 등장했다. 전략적 자율성의 개념은 본래 군사와 외교·안보 분야에서 등장했지만, 점차 산업, 무역, 디지털, 에너지, 기후변화 등 다양한 정책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EU의 공식 문헌에서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점은 2010년 전후이며, 2017년 이전까지는 거의 전적으로 공동안보방위정책(CSDP) 분야에서만 언급되었다. 이후에는 다양한 정책 분야로 용어의 사용이 확대되었다.


中 대외정책, 유럽에 경각심
핵심 산업 외부 의존도 축소
EU의 '전략적 자율성' 확대
안정성·회복 중심 정책 선회

디지털·환경 등 신통상 규범
주요국 협력·입지 강화 필요



2017년을 전후해서 전략적 자율성의 개념이 다른 정책 분야로 확대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점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하고 미·중 무역갈등이 전면적으로 표출된 시기이며, 유럽이 중국을 바라보는 인식이 변화한 시점과 일치한다. 다자무역체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는 경제 분야의 국제질서에서도 유럽이 미국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한편 경제대국이 된 중국의 대외정책은 유럽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일례로 2010년 이후 중국 기업이 서유럽 주요국의 제조업 분야에서 인수·합병(M&A)을 크게 늘린 점은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다. 2019년 EU의 중국 전략백서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체제적 라이벌로 규정하면서 기존의 유화적인 대중국 정책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전략적 자율성의 정책 사례

EU는 미국 등 입장이 비슷한 국가와 최대한 협력하되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통상정책 분야에서는 외국인직접투자 스크리닝(FDI Screening Regulation) 제도, 역외보조금 금지제도, 통상위협 대응조치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역외보조금 금지제도는 국가보조금의 수혜를 누렸다고 판단되는 외국기업에 대해서 EU의 기준에 따라 조사, M&A 불허, EU내 조달사업 참여 제한 등의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제도이다.

통상위협 대응조치는 제3국의 경제적 위협이 EU와 회원국들의 합법적인 정책 결정을 부당하게 방해하며 EU의 전략적 자율성을 약화시킨다고 판단할 경우 이에 대한 보복을 취할 수 있는 조치이다. 산업정책 분야에서는 EU의 국가보조금 규제를 수정하여 전략적 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했다.

또 반도체·전기차 배터리·수소에너지 등 핵심분야에서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고, 핵심원자재의 수급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EU의 정책은 핵심산업의 공급망에 있어 외부의존도를 축소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 표방한 EU

EU는 전략적 자율성의 기조를 산업 및 통상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에 반영했다. 특히 통상분야에서는 '개방'을 추가하여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을 표방하면서 이를 반영한 통상정책 모델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은 다자주의에 기반을 둔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하되, 국가 간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EU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EU는 EU가 강점을 갖고 있는 사회적 규제(기후, 환경, 인권)를 통상정책과 기업의 공급망에 적용시키는 방식으로 비(非)가격적·비(非)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더불어 유럽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도입하면서 통상정책에 방어적·포괄적·전략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이 같은 EU의 정책은 자국의 시장규모를 활용해 통상정책에 있어 영향력을 확보하는 기존 방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규범적 권한을 통해 EU의 규제를 확산시킴으로써 우위를 점하고자 했던 기존의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큰 도전이 된 대외환경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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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덕 한국외대 LT학부 교수

유럽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대외환경의 변화는 경제성장의 궤적이 국제무역의 팽창과 궤적을 같이했던 한국 경제에 큰 도전이 된다. EU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지난 수년간의 추세는 공급망의 비용 효율성보다는 안정성과 회복력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또 다른 국가의 불공정 행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통상분야에서 다수의 작은 분쟁과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도를 형성한다. 2018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한국 측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이 미흡하다고 주장하며, 한국 측에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한 바 있으며, 이 사안은 최종 판결인 패널 보고서 채택까지 진행된 바 있다.

EU의 시각에서 보면 이 상황은 EU가 추구해온 전략적 자율성의 패러다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의 통상정책은 수출확대에 목표를 둔 전통적 통상정책 외에 디지털·노동 및 환경 등의 신통상 규범을 포함해야 하며,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산업 및 통상정책에 표출되는 전략적 조치에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마련하고, 글로벌 규범에 맞게 국내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요국의 공급망 안정화 전략에 최대한 참여함으로써 새롭게 재편되는 산업·통상 협력체제에 내부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글=강유덕 한국외국어대 LT(Language and Trade)학부 교수
정리=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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