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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
11월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찬 바람이 부는 달이다. 여름 휴가도, 9월 보너스도, 10월의 긴 추석연휴도 끝나고, 이직을 생각했던 직장인이라면 이제 구체적 실행을 고민하는 시점이다. 젊은 직장인들의 퇴사 이유에 대해 올해 초 동아일보와 청년 재단이 함께 실시한 '청년 이·퇴직 인식 조사'에서 많은 젊은이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무너져 퇴사를 결심했고, 새 직장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도 '근무 환경'(55%)일 정도로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워라밸은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 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워라밸과 관련 동아일보 조사에서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인식이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70% 정도의 청년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조용한 퇴사'이다. 2023년 주요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힌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신조어는 미국 뉴욕의 24세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이 2022년 7월 틱톡에 이 개념을 담은 영상을 올린 뒤 SNS를 타고 전 세계에 퍼졌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일이 곧 삶이 아니며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성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만 최소한으로 하고 그 외 회사 일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직장을 조용히 퇴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적으로 퇴사에 가까운 마음가짐을 갖고 회사 생활을 하겠다는 뜻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마도 일과 삶, 즉 워크와 라이프는 다른 두 개의 세계이고 하나에 몰입하면 다른 하나는 손해 보는 제로섬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닐까? 특히 우리의 경우 과도하게 기울어졌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밸런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말한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는 이 말은 인간을 지치게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워라밸'은 거래관계로 유지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일과 개인 생활은 하나의 조화로운 원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행복한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출근할 수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 즐겁게 일한 뒤엔 역시 건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
일과 노력이 행복에 기여한다는 'eudaimonic happiness'라는 심리학적 개념도 있다. 사람들이 역할을 하고 잠재력을 실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을 가리키는 말로 때로는 어려운 일이 만족감과 자부심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2021년 영국에서 행해진 실험에서 실험 참가 전 '15분간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혹은 '15분간 걷기'라는 두 가지 선택 중 15분간 걸어온 피실험자는 15분간 기다렸던 피실험자보다 훨씬 행복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어떤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행위 자체가 행복감을 높인다는 말이다.
'왜 일하는가'라는 책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렸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많은 사람이 일이 자기와 맞지 않아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고 그래서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딱 맞는 일은 이 세상에 없는 파랑새이기에, 무슨 일이 아닌 일 자체에 대한 몰입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지금 퇴사를 고민 중인가? 아니면 조용한 퇴사 중인가?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내 삶에서의 일의 의미에 대해 지금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전창록 대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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