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를 찾아서] '경주 출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황인식 사무총장 "공동체 그늘 없애고, 시민 위해 봉사…가슴 뛰게 하는 즐거움이죠"

  • 김은경
  • |
  • 입력 2023-11-22 08:25  |  수정 2023-11-22 08:25  |  발행일 2023-11-22 제25면
고향서 보낸 어린 시절, 제 인생 소중한 장면
공직 뛰어들어 '공동체 복원' 복지정책 매진
일상 속 지속가능한 기부문화 확산 주력할 것
대구경북, 사랑의 온도탑 100도 달성에 모범

황인식1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황인식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때 사상 최고의 모금액이 모였던 것처럼 지금 경제가 어려워도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나눔캠페인에 참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면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 17개 시·도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다. 국민의 나눔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온도탑의 수은주가 높아질수록 찬바람 부는 이 도시에 살 맛 나는 온기는 쑥쑥 올라간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해도 다음 달 1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고, '나눔 캠페인'을 전개한다. 기부와 나눔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황인식 사무총장을 만났다.

◆산 좋고 물 좋은 내 고향 '내남'

황 사무총장의 고향은 경주시 내남면이다. 천마총 서편 정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능, 나정, 포석정, 삼능솔밭을 지나서 이르는 내남면은 남산의 정기와 형산강의 상류가 관통하는,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은 청정지역이다. 농사꾼 집안, 삼형제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착실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아들이었다. 초등학생 때 이미 쌀 두서 말쯤 너끈히 들어 올리고, 부모를 도와 힘든 일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지만 1등을 도맡아 했다. 내남면에서 초·중등 과정을 마친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대구로 나와 홀로 유학 생활을 했다.

"고향 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지금도 제 가슴에 보석처럼 박혀 있어요. 여름밤 온 가족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밥 먹던 일, 밤하늘 별을 보면서 나눈 이야기 등이 제 인생의 소중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복지 패러다임

연세대 법학과로 진학한 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일찌감치 법관의 꿈을 접었다. 주변의 추천을 받아 선택한 학과였지만 도무지 자신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고, 벌을 주는 과정이 성격상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졸업 후 서초구청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동체 다수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가슴 뛰는 즐거움이었다. 그는 특히 복지 분야에 주력했다.

"제가 생각하는 복지는 무조건 많이 나눠주는 것이 아니고, 수준에 맞춰 지속 가능한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에요."

서울시 장애인 복지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시청 내에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만들어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장애인 카페는 개업하면서부터 언론과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았고, 이후 서울시 산하 각 구청과 전국 지자체로 확산했다.

"장애인 분들이 많든 적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청사 내에 카페를 만들었어요. 카페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여러 긍정적 피드백이 돌아왔는데,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이 스스로 사회의 일원임을 인지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는 반응에 뭉클했어요."

◆사람 중심의 도시재생 사업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사례는 또 있다. 그는 안전 문제로 철거 위기에 놓인 서울역 고가도로를 사람이 다니는 길로 재탄생시킨 '서울로 7017'의 종합기획추진단장을 맡아 사업을 총괄했다. 1970년대 만들어진 차량 길이 2017년 17개의 사람 길로 만들어져 재탄생했다. 이 사업은 사람이 중심이 된 도시재생의 첫 사례로 지금까지도 전국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1년 퇴임할 때까지 25년간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그가 꿈꿔온 세상은 어떤 것일까. 황 사무총장은 "장애인의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고, 갈라진 도시 길을 사람의 길로 재탄생한 것 등 제가 했던 모든 활동은 '공동체 복원'을 위한 노력이었다"라며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되살리고, 공동체의 그늘을 없애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한국 대표하는 나눔 플랫폼

그는 지난해 10월 제9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사랑의 열매'로 잘 알려진 이 단체는 국내 유일의 법정 모금·배분기관이다.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지역사회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기초생계부터 교육 자립, 보건의료, 문화 격차 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지원한다. 그는 복지 분야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쌓은 전문성을 살려 현장에서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포부에 부풀어 있다.

우선 대형마트와 연계한 '키오스크 기부' 등 일상생활 속 기부문화 확산에 주력할 작정이다. 이를 위해 대형마트 결제 단계에 '기부 코너'를 추가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현재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에서 시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같은 모금 시스템을 정착시킴으로써 국내에서도 이용자 중심의 나눔 참여 문화를 확산하고, 기부의 투명성과 신뢰도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1천500만 반려가구 시대를 맞아 반려동물 기부 프로그램 '착한 펫', 고액기부자 전담 기능을 강화한 '아너 소사이어티 오플러스' 론칭 등을 준비하고 있다.

◆'나눔 DNA' 흐르는 대구경북

대구경북의 나눔 문화를 모범적이라고 했다. 황 사무총장은 "대구경북은 나라가 어려울 때 민간 주도로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나눔 DNA가 흐르는 지역"이라며 "대구는 8년째 희망나눔 캠페인 100도를 달성하고, 경북은 전국적으로 비교했을 때 개인기부 참여율이 높은 선진국형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특히 "올해 8월 대구지역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들이 광복절을 맞이해 역사 인물 최초로 서상돈 선생을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로 추대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해도 다음 달 1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62일 동안 연말연시 나눔캠페인을 전개한다. '기부로 나를 가치 있게, 기부로 세상을 가치 있게'라는 슬로건도 정해졌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 위기와 전쟁 이슈 등으로 모금 활동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황 사무총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였던 2020년에 역대 최고 모금액인 8천461억원이 모였던 것처럼 이번에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십시일반 나눔의 물결이 퍼져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