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진정한 국위선양

  •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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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2  |  수정 2024-02-02 08:23  |  발행일 2024-02-02 제12면
재주는 박찬호가 부리고 돈은 MLB가?…그는 우리에게 경제가치 이상의 자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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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1994년 한 청년이 김포공항에서 LA공항으로 떠나며 호언장담했다. "미국에 가서 100억원을 벌어오겠습니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나는 몇 달 뒤 매우 난처한 지경에 떨어지고 말았다. PC통신으로 그의 활약을 너무 열심히 검색해본 나머지 감당할 수 없는 전화세 청구서를 받아들고 말았던 것이다.

국민들의 기대 속에 도미했던 그는 결국 꿈을 이루었고, 자신이 벌어오겠다던 돈의 10배 넘는 돈을 벌어들이며 금의환향하게 된다.

박찬호가 맹활약하던 당시 한국인들은 너도나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 "한번 등판하면 3억원을 벌어들여." "공 한 개 던지면 300만원이네?" 외화를 그렇게 많이 벌어오니 이야말로 진정한 국위선양이라는 감탄이 이어졌다. 결국 마지막에는 자동차를 몇 대 수출해야 그가 버는 돈을 벌어올 수 있는지에 대한 기사까지 등장하고 말았던 것이 당시의 분위기.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사고는 단순히 촌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명백한 계산착오에 불과한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박찬호가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 한국의 GDP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그 세금 또한 캘리포니아주나 텍사스주 정부가 가져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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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으로 들고 들어온 돈이 막대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반면 우리는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막대한 중계권료를 MLB 사무국에 지불하는 한편, 매년 어마어마한 MLB 라이선스 상품들을 사들이는 새로운 쇼핑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가 한창 활약하던 시기에 KBO의 인기가 폭락했던 점과 수많은 한국인들과 유학생, 교민들이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구장을 찾았던 것까지 떠올려보면 결국 우리는 항상 곰보다 왕 서방이 더 벌게 되는, 그런 구조의 놀음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박찬호를 여전히 사랑한다. 결과적으로 경상수지에 적자를 준 사람인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결국 경제의 진짜 본질은 '효용의 거래'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 시절 우리는 '한 젊은 한국인이 우여곡절 끝에 최고의 리그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그 영화 같은 스토리텔링을 마음껏 즐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 소소한 비용들은 발생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느낀 큰 기쁨에 비하자면 충분히 지불 가능한 액수였음이 분명했다. 내게도 그의 승전보는 폭증한 전화세의 야단을 잊게 만드는 어떤 열락이 분명 있었으니.

2023~2024시즌부터 한국 프로배구에 '아시아쿼터 제도'가 도입되었다. 우리 배구리그가 MLB처럼 세계적인 리그까지는 아니라 해도 많은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꽤 구미가 당기는 일자리였음이 분명하다. 각국의 많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여기에 지원해 온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제도를 통해 국내에 입성한 인도네시아 출신의 '메가왓티 퍼티위'는 여자배구 1라운드 MVP에 선정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부가효과도 발생했다. 그녀의 맹활약이 인도네시아에 소개가 되며 KOVO가 크게 조명을 받았고, 경기마다 재한 인니인들이 경기장을 찾아 흥행에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왕 서방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느냐 하면 그런 것까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돈벌이만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효용의 거래다. 수많은 아시아인이 자국 선수의 KOVO에서의 활약에 기뻐하고 자부심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 역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선수들로 리그 수준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누가 더 벌었는지 더 잃었는지는 자세히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짜 국위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무대의 크기와 개방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젠 모두 깨닫고 있지 않나.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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