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 서울 정치부장 |
흔히들 대구경북(TK)을 '보수의 심장'이라 부른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도 지겹게 들어왔던 말이다. 4·10 총선이 다가오자 TK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소속 예비후보들은 앞다퉈 자신만이 '보수의 심장'을 지킬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보수의 심장'을 지킬 인물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대구의 한 정치인과 총선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번 총선에 나선 TK 현역 의원들이나 출마예정자를 다 합쳐도 인재 풀이 너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여야를 떠나 지역에서 인재 발굴, 대체 가능한 정치인을 꾸준히 육성했다면 유권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을 것"이라며 "TK 정치권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경쟁력 있는 신인 정치인들이 이번 총선에 대거 나섰다면 재당선을 희망하는 현역 의원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참신하고 획기적인 공약들도 쏟아졌을 것이다. 현역 의원들도 지금보다는 더 간절한 마음으로 민심을 다지고, 지역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치열한 경쟁 구도가 없으니, 지역 정치권은 민심보다는 최상위 권력과 가까워지려고만 애쓰는 것 같다.
이 때문일까. 이번 총선에서 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다. 유권자들은 현수막을 제외하면 총선이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정당별 후보가 확정되면 좀 더 선거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유권자들은 선거 분위기가 뜨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관심 가는 정치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투표 당일 어떤 정치인을 선택해야 할지 술잔을 기울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 여야를 떠나 그만큼 TK 정치가 쇠락했다는 방증인 셈이다. 되짚어 보면 TK를 상징할 거물급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히 차기 대권 주자도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5명의 대통령과 수많은 거물급 정치인을 배출한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TK 정치는 너무나 초라하다.
필자는 최근 고위관료 출신으로 TK 출마를 고민했던 한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통령실의 확실한 오더(?) 없이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 놀라웠다. 국회의원은 하고 싶으나, 100% 확실한 담보 없이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치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겠다는 심보 같아 허탈했다. 또 국민의힘 현역 의원이나 예비후보자 중에는 자신을 소개할 때 철 지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을 들먹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지역 유권자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사가 더 중요해 보였다.
심장은 뜨거운 피를 온몸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장기이다. 그렇다면 TK 정치권은 보수의 심장답게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고, 개혁을 주도해야만 한다. 능력 있는 정치인도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보수의 심장은 머지않아 병든 심장이 될 수밖에 없다. 풍패지향(豊沛之鄕·새 왕조를 일으킨 제왕의 고향)을 위한 TK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임호 서울 정치부장
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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