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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더, 많은 숫자의 지배'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숫자 사회'를 이해하고, 일명 '수 유행병'에서 벗어날 방법을 제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만보기 앱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는 걸음을 기록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아니,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얼마나 걸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뭔가 허전하다.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어떤가. 맛은 숫자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검색 포털에 식당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평점을 의식해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수로 헤아려진다. 오늘 몇 걸음을 걸었을까. SNS 친구는 몇 명인가. 숫자로 표현되는 것은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로 느껴진다.
이 책은 무의식중에 우리를 통제하는 '숫자 사회'를 이해하고, 측정·계산·비교라는 숫자의 미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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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달렌·헬게 토르비에른센 지음/이영래 옮김/김영사/232쪽/1만5천800원 |
책의 두 저자는 경제학자다. 이들은 숫자와 인간 행동 및 행복의 관계를 연구하며 수치화된 존재를 비판해왔다. 책에선 수의 역사부터 수가 개인의 건강과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 수가 성과와 경험을 좌우하는 방식, 수가 재화이자 진실이 되어버린 현실을 들여다봤다. 또 다양하고 흥미로운 연구와 사건, 일상적 경험과 예시를 들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숫자에 의존하는 현 세태를 명쾌하게 진단한다.
책에선 인간이 숫자에 영향을 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특히 소개하는 내용 중 스포츠의 사례를 보면 두드러진다. 올랜도 매직의 닉 앤더슨은 시카고 불스와 치른 준결승 1차전 경기 종료 6초 전 마이클 조던의 공을 빼앗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45는 23이 아니다." 당시 마이클 조던의 등 번호가 그를 상징하는 '23'이 아니었기에 공을 빼앗는 것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휴식기 후 복귀한 조던은 당시 23번이 아닌 45번을 등 번호로 선택했다. 다음 시즌 조던은 등 번호를 23번으로 바꾸고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시카고 불스도 다시 3연패를 달성했다.
이에 대해 두 저자는 "등 번호가 마이클 조던을 세계 최고의 농구 선수로 만들었다는 것은 수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쯤이면 당신은 인간이 수에서 큰 의미를 읽어내려는 경향이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배경에서 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선 오늘날 숫자가 모든 것을 측정하게 만든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심지어 객관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경험도. 숫자는 경험에서 다채롭고 특이한 부분이라는 정성적인 차이를 없애고 정량적 차이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저자는 숫자가 모두 객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람의 모든 경험은 유일무이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설문에 응답할 때 사실을 조금 왜곡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적게 보고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조회 수, 공유 수, 좋아요 수 등 뉴스를 둘러싼 수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들은 어떤 메시지를 둘러싼 수가 그 메시지의 진실에 대해서 무엇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수와 측정은 어느 사회에서나 성과 향상의 수단이자 징계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물론 측정에 따른 평가는 단기적인 성과를 높이는 데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량화는 측정 가능한 항목에 행동을 맞추게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두 저자는 단순히 측정과 정량화를 근절하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
이들은 이렇게 조언한다. "수는 당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수를 사용할 때는 항상 조심하고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라."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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