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84세 정향임 어르신 '밥은 먹고 다녀라' 뚝배기 그림 전시

  • 천윤자 시민기자
  • |
  • 입력 2024-03-26 10:33  |  수정 2024-03-27 08:52  |  발행일 2024-03-27 제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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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경북 경산역 맞이방 갤러리에서 생애 첫 전시회 '밥은 먹고 다녀라'를 열고 있는 정향임 어르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렵던 시절 국밥집을 열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나이 팔십이 넘어 뚝배기 그림으로 대신합니다."

최근 경북 경산역 맞이방 갤러리에서 '밥은 먹고 다녀라'라는 주제로 생애 첫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정향임(부산) 어르신. 올해 84세인 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국밥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뚝배기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꽃밭, 숲, 놀이터, 약국, 연못 등을 그린 그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뚝배기가 등장한다. 뚝배기에는 밥뿐만 아니라 꽃도 담겨 있고 꿈도 담겨 있다. 소박하고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 담긴 듯한 뚝배기 그림이 경산역 열차 이용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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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의 나이로 첫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는 정향임(왼쪽) 어르신이 경북 경산역 맞이방 갤러리에서 딸 홍순영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미술을 전공한 딸 홍순영씨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림에 흥미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런 엄마를 위해 순영씨는 칭찬으로 격려하고, 값을 지불하며 그림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정씨는 운명처럼 뚝배기에 꽂혔다. 과거 이루지 못했던 '따뜻한 소망'이 떠올랐던 것. 순영씨는 "뚝배기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그림에 재미를 느끼셨다.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셨다"며 "젊은 시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엄마가 뚝배기 그림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같다"고 말했다.

경산역 전시장에 마련된 방명록에는 "보릿고개, 배고픈 시절을 살아 오신 작가님의 애환이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후세에게 교훈이 될 작품입니다" " 뚝배기에 담긴 애환, 정, 사랑을 마음 가득 담아 갑니다" 등 감동과 공감의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경산에서 사는 한 여성은 "늘 밥 챙겨 먹어라 하시던,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며 울먹거렸다.

딸의 권유로 전시회까지 열게 된 정씨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원으로 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손이 떨리고 몸도 힘들지만 그림 그릴 때가 가장 즐겁다. 내 그림을 보고 잠시라도 위로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경산역 갤러리 담당직원은 "경산역 하루 이용객이 5천명이 넘는다. 작가에게는 무료로 장소를 제공하고, 이용객에게는 볼거리를 주기 위해 전시공간을 마련했다"며 "80대 어르신의 전시회가 열려 관심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kscyj8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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