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낙동강 역사 너울길…낙동강 물길따라 4.5㎞…6·25 호국정신이 숨쉰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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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19  |  수정 2024-04-19 07:50  |  발행일 2024-04-19 제15면

[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낙동강 역사 너울길…낙동강 물길따라 4.5㎞…6·25 호국정신이 숨쉰다
구 왜관철교는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의 상징물로 '호국의 다리'로 불린다. 다리 건너 자고산 자락에 애국동산이 자리한다.

왜관읍 서쪽으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른다. 강물은 단단해 보였다. 수면을 뒤덮은 잔물결들은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엎드려 새겨 넣은 각인처럼 느껴졌다. 종일 미세먼지 매우 나쁨, 초미세먼지 나쁨을 기록한 날이지만 강변은 숨쉬기에 썩 괜찮았고 새순이 잔뜩 돋아난 수목의 터널에서는 새소리가 청아했다. 이곳에서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은 과거와 점점 멀어지는 것인데, 거리감과 상기 사이에는 알지 못할 어떤 미덕이 있어 덕분에 오늘 걸음은 평안하다.

칠곡군 약목면 관호리 오토캠핑장~제2 왜관교 구간 조성
6·25전쟁때 끊겼던 '호국의 다리'·자매도시 공원 등 지나
강변 절벽 버드나무터널·메타세쿼이아 흙길도 아름다워


◆낙동강 역사 너울길

약목면 관호리 관호산성 아래 오토캠핑장에서부터 기산면 죽전리 제2 왜관교까지 4.5㎞ 구간을 '낙동강 역사 너울길'이라 한다. 칠곡군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구 왜관철교 상·하류 일대 조성한 길이다. 캠핑장을 지나 칠곡보에서 잠시 멈춘다. 공도교 양쪽에 사각의 액자와 하트 액자 포토존이 있다. 액자 속으로 강 건너 풍경이 들어찬다. 태극기가 높이 휘날리는 건물은 칠곡 호국평화기념관이다. 수년 전 기념관의 입체영상관에서 본 328고지 마지막 전투 영상은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아 있다. 그 옆에 가로로 긴 건물은 칠곡보 통합관리센터, 센터 위로 보이는 기와지붕들은 향사아트센터다. 칠곡 출신 국가무형문화재로 국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향사 박귀희 명창의 호를 따서 만든 지역 최초 국악 공연장이다.

[주말&여행] 경북 칠곡군 낙동강 역사 너울길…낙동강 물길따라 4.5㎞…6·25 호국정신이 숨쉰다
칠곡보 공도교 양쪽에 액자 포토존이 있다. 강 건너에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칠곡보 통합관리센터, 향사아트센터 등이 자리한다.

뒤돌아보면 관호2리 마을 뒤로 해발 110m의 백포산(栢浦山)이 아담하게 솟아 있다. 저곳에 삼국시대의 성곽인 관호산성이 있다. 본래 이름은 백포산성이었는데 임진왜란을 거치며 관호산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의 정자는 '관평루'다.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평화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칠곡보에서 산을 올라 내성 석축을 따라 걷는 '관호산성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관호2리는 구왜관(舊倭館)마을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일본인 사신이나 교역자들의 숙소가 있던 곳이다. 1905년 일본인들이 경부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관호리의 왜관에 역을 설치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백포산으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다는 이유로 강 건너 파미면 회동에 역을 설치하고 왜관역이라 했다. 현재의 왜관리 왜관역이다. 그때부터 관호리 왜관은 구 왜관이 되었다. 백포, 왜관, 관호, 관평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중첩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호는 '호수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산 아래 낙동강은 정말 호수처럼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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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절벽에 버드나무가 터널을 이룬 아름다운 길을 지난다. 오직 바람소리, 새소리만이 청아하다.

◆칠곡보에서 왜관철교까지

칠곡보에서 왜관철교까지는 강변서로 제방길이 뻗어있다. 벚나무 길이다. 낙동강 역사 너울길은 제방 아래 강변 들판의 산책로로 이어진다. 덩굴장미와 머루포도와 능소화가 차례로 연결된 긴 터널을 지나면 '자매도시 공원'이 펼쳐진다. 꽃 모양의 입체적 구릉이 산철쭉으로 뒤덮여 있고 황금사철과 회양목이 꽃잎 하나하나의 경계선을 부드럽게 그린다. 초봄에는 칠곡의 꽃인 매화가 피었다 졌고, 머지않아 작약이 만발하겠고, 가을에는 구절초가 피어나겠다. 칠곡군의 자매도시는 중국 제원시와 전북 완주군이다. 각각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상징적인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완주의 봉동이 우리나라 최초의 생강 재배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왜관철교 아래를 지난다. 주변은 공사를 하는 모양으로 약간 어수선하다. 점심 식사를 막 마친 인부들이 저마다의 휴식에 빠져 있다. 기차가 긴 여진을 남기며 지나간다. 강변에는 유채꽃이 조금, 제비꽃은 카펫으로, 거대한 두 그루의 버드나무는 신선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서 있다. 왜관교 아래를 지난다. 사철나무와 대나무가 울타리를 이룬 깨끗한 길이 이어진다. 사철나무 너머 오렌지 빛깔의 건물은 경북도와 칠곡군의 청년연합회 건물이다. 그 옆은 강 쪽으로 테라스가 있는 카페다. 그리고 바로 구 왜관철교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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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도시 공원 내의 중국 제원시 공원.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조형물이 있다.

◆호국의 다리에서 제2 왜관교까지

구 왜관철교는 일제가 1905년 군용 단선 철도로 개통한 경부선 철교다. 1941년에 복선인 왜관철교가 가설되면서 이 다리는 경부선 국도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6·25전쟁 때, 유엔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 다리의 경간 1개를 폭파했다. 이를 계기로 유엔군은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했고 북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구 왜관철교는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의 상징물로 '호국의 다리'로 불린다. 1979년 안전상의 문제로 전면 통제되기도 했지만 1993년 이후 인도교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 호국의 다리는 공사 중이다. 2025년 8월까지 호국의 다리 일원에 호국평화테마파크를 조성할 예정이다. 철교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하얀 탑은 왜관지구전승비다. 탑 일대는 '애국동산'으로 칠곡 출신 애국지사들의 위령비와 추모비, 기념비, 제단 등이 모여 있다. 애국동산은 자고산 자락에 위치하는데 산 정상에는 평화 전망대와 한미전몰장병 추모비가 있다. 오늘 전망대는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강변 절벽에 버드나무가 터널을 이룬 아름다운 길을 지난다. 오직 바람소리, 새소리만이 청아하다. 대나무 숲을 지난다. 캐주얼한 수트 차림의 중년 남자를 스친다. 바짓단을 둥둥 걷어 올린 그는 맨발이다. 신발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죽전리에 들어선 듯하다. 물소리 들린다. 좁은 계류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제 절벽은 조금씩 누워 구릉지와 들판으로 펼쳐진다. 국립환경과학원 수질측정센터를 지나 하우스 밭과 대단한 소나무를 가진 과수원을 지나 멀리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서 있는 들판의 흙길로 나아간다. 길가에는 하얀 모래별꽃, 보랏빛의 갈퀴나물, 연보랏빛 주름잎꽃, 청보라 빛의 큰봄까치꽃이 한창이다. 가장 많은 것은 샛노란 고들빼기와 애기똥풀이다.

제방 위로 몇 채의 집들이 보인다. 비스듬한 사면을 한 여인이 강아지와 함께 내려와 강변의 벤치에 앉는다. 그러고 보니 지도에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샛길을 여러 번 보았다. 관호에서 두어 번, 죽전에서 두세 번 정도였던 듯하다. 수트의 남자도 그렇게 강변으로 내려섰겠지. 강마을 사람들은 언제든 아주 빨리 강변에 닿을 수 있구나. 멀리서 한 여인이 걸어온다. 멀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녀는 맨발이다. 오른손에 쥔 신발이 달랑거린다. 그녀를 지나쳐 메타세쿼이아 길의 끝에서 뒤돌아선다. 돌아가는 길, 오늘의 인상과 추념 사이에는 어떤 알지 못할 미덕이 있어 덕분에 걸음이 평안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경부고속도로 대전방향 왜관IC로 나간다. 톨게이트 지나 오른쪽 왜관방향으로 나가 직진, 매원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한다. 제2 왜관교 건너 우회전해 직진, 관호오거리에서 12방향으로 직진해 관호교차로에서 오른쪽 강변서로로 나가 직진한다. 관호2리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빠져나간 뒤 우회전하면 칠곡보 오토캠핑장(관호산성 둘레길 입구)이다. 캠핑장 맞은편에 주차장이 있고, 강변서로를 따라가면 칠곡보 우안 부근과 왜관철교 아래쪽에도 주차 공간이 있다. 관호오거리에서 1시 방향으로 나가면 곧바로 왜관철교 아래 주차장에 닿는다. 제2 왜관교 아래 강나루 체육공원에서 출발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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