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꽃 한 송이에"…관용이 사라진 사회

  • 이승엽
  • |
  • 입력 2024-06-14  |  수정 2024-06-19 08:13  |  발행일 2024-06-14 제1면
■보도의 그 이후, 뉴스後
검찰, 꽃 한송이 꺾은 할머니에 기소유예
최초 보도 후 관련 기사 60여개 쏟아져
"고작 이정도에" 각박해진 사회 비판도
기소유예 처분 의견 분분 "무혐의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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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영남일보 DB
아파트 화단에서 꽃 한 송이를 꺾은 죄로 검찰에 넘겨진 80대 할머니(영남일보 6월12일 2면 보도)에게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지만, 연령이나 환경, 범행의 동기 및 수단, 범행 후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기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죄는 있되 처벌까진 가혹하다는 의미다. 비록 할머니가 기소유예 처분으로 받을 실질적 불이익은 없지만, '절도범'이라는 누명은 끝내 벗지 못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투성이로 남았다. 치매 초기 증상을 앓는 팔순의 할머니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아파트 화단에서 꽃 한 송이를 꺾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입주민의 편익을 도모해야 할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는 입주민 보호는커녕 수십만 원의 합의금까지 종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키웠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알려지자 전국은 공분했다. 영남일보의 최초 보도 후 이튿날부터 전국 40여 개 언론사에서 60여 개의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수많은 누리꾼은 할머니가 꽃을 꺾은 행위가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고작 이 정도 사안으로 검찰의 판단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건은 사실상 종결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무혐의'가 아닌 '기소유예'로 끝나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기소유예를 받으면 전과 기록은 남지 않지만, 수사경력 자료는 5년간 남는다. 또 검사가 범죄는 성립한다고 판단한 것이므로,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아파트 측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도 가능해진다.

기소유예 처분에 대한 법조계의 의견은 분분하다. 기소유예 처분이 타당하다는 입장도 있지만, 무혐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의견도 만만찮다. 꽃을 꺾은 할머니는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거주해 온 입주민이다. 아파트 화단에 핀 꽃은 입주민의 공동 재산으로 볼 수 있어, 할머니도 지분을 갖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절도죄의 구성 요건인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번 사건에서 검·경찰이 절도죄 구성 요건에 대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하거나, 오해석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꽃을 꺾은 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과연 팔순의 할머니가 꽃 한 송이를 꺾은 행위에 대해 죄를 묻는 게 맞냐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어린이가 길거리에 휴지를 버렸다고 처벌하지 않는 것처럼 할머니가 꽃을 꺾은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또 할머니는 치매 초기 증상을 앓으며 인지 능력과 판단 능력이 크게 약해진 상태다. 책임 능력이 결여된 상황에서 꽃을 꺾은 행위 정도로는 '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천주현 형사전문변호사는 "기소유예는 법원이 내리지 않은 일종의 전과"라며 "사안에 맞는 구체적 타당성 있는 처분이 아쉽다"라고 했다.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할머니의 딸은 "후련하면서도 섭섭한 느낌이다. 과연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할머니의 딸뿐만 아니라,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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