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를 찾아서]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상' 받은 대구 출신 윤한결 지휘자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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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10  |  수정 2024-07-10 08:33  |  발행일 2024-07-10 제25면
"가장 멋진 소리 내려는 악기 연주자 입장서 지휘의 말·동작 생각"

[출향인사를 찾아서]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상 받은 대구 출신 윤한결 지휘자
최근 무섭게 떠오르는 'K클래식' 열풍의 중심에 있는 대구 출신의 윤한결 지휘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독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과의 연주를 앞둔 그는 최근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지휘자 중 하나다. 〈크레디아 제공〉

'K클래식' 돌풍이다. 실력으로 무장한 한국의 젊은 음악인들이 성악, 연주, 지휘 등 클래식 전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주요 상을 석권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한 지휘자도 있다. 대구 출신의 윤한결 지휘자다. 1994년생, 올해 서른 살인 윤 지휘자는 냉철한 분석과 끈기 있는 호흡으로 콘서트마다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여 감동을 주고 있다. 또 사이먼 래틀, 다니엘 바렌보임, 정명훈 등 세계적 연주자들이 속한 세계 최대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의 하나인 아스코나스 홀트와 전속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윤 지휘자는 "음악이 가진 최고의 매력은 누구나 스스로 각기 다른 해석과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고향인 대구에서 (제안이 왔지만)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지휘자로 무대에 서지 못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지휘자로 고향의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유럽 전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윤 지휘자와 e메일로 연결했다.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외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수상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연이 있던 악단은 물론이고, 전혀 접점이 없던 악단과 교류가 늘었다. 지난 2월에는 다니엘레 가티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 극장의 마죠 무지칼레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2차례 지휘했다. 한국의 국립심포니와도 작업을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 지휘자의 꿈을 꾸게 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매니저분들이 연주회 때 직접 보러 오고,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30대 젊은 지휘자인데, 100여 명의 단원들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노하우는 뭔가.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 나 자신 그대로를 정직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면 나이, 성별, 인종, 국적 상관없이 음악가 대 음악가로서 서로 같거나 좋은 방향으로 음악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힙합 방식 즉흥 작곡 즐겼는데
獨 철저함에 유학 적응 힘들어
별생각 없이 피아노·지휘 공부
음악에 대한 즐거움 다시 찾아

지휘자들 역할·역량 워낙 다양
작품·악장 하나하나에 롤 모델

일정 맞지않아 무대 못 섰지만
고향 대구의 관객 꼭 만나고파



▶작곡 전공으로 출발해 지휘자로 성장하고 있다. 강점은 뭔가.

"작곡할 때 수없이 내 작품을 다시 읽고 수정하고, 동시에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많이 분석하다 보니 작곡가의 기술적, 음악적 의도가 (어느 정도) 잘 파악되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비교적 악보 읽는 속도가 빠른 것 같다."

▶롤 모델로 삼은 지휘자가 있나.

"지휘자의 역할과 역량이 워낙 다양한 만큼, 롤 모델도 다양하다.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인품과 단원들을 아우르는 아우라의 기준으로는 사이먼 래틀 경과 마리스 얀손스가 먼저 떠오르고, 지휘 테크닉(손짓과 몸짓 등) 자체만을 보면 파보 예르비, 다니엘 하딩이 떠오른다. 시대와 작곡가를 넘어 작품 하나하나 혹은 악장 하나하나에 롤 모델이 각각 있다. 심할 때는 한 악장 내의 특정 몇 마디마다 롤 모델이 되는 지휘자들이 있을 정도다. 지휘를 처음 공부할 때 이 분들의 음반과 얼마 없는 영상들을 보며 크게 감명받았던 기억이 난다."

[출향인사를 찾아서]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상 받은 대구 출신 윤한결 지휘자
윤한결 지휘자 〈크레디아 제공〉

▶작곡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데, '힙합' 시리즈가 인상적이다. 클래식 분야에서 힙합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인 게 이채롭다.

"음악을 처음 접할 때부터, 느끼는 대로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그 즉흥곡을 악보에 그려 넣는 방식으로 작곡을 하며 즐거워했다. 다만 독일에서는 체계적이고, 철저한 음악을 요구했기에 적응하는 데 힘든 점이 많았다. 그렇게 유학 초반 몇 년간의 힘든 작업을 반복하다가 큰 생각 없이 시작한 피아노와 지휘 공부를 통해 아드레날린을 느끼고, 음악에 대한 즐거움을 다시 찾았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야 작곡도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즐겁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최대한 재미있게 작곡을 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힙합 경연대회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느낀 힙합의 특징들을 클래식 음악의 시선에 맞춰 패러디하듯 작곡한 '힙합'이 대표적이다."

▶오는 8월에 열리는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서 빈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직접 작곡한 곡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힙합'도 만날 수 있나.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뜻깊고 중요한 연주가 될 것이니만큼 완성도 높은 음악을 준비할 생각이다. 잘츠부르크에서 연주할 곡은 '힙합'은 아니다. 당일 연주곡인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의 앞에 힙합은 적절치 않다고 여겼다. 연주곡은 5월 초 '브람스교향곡 전곡 연주회'를 마치고, 2~3주간 바짝 집중해서 완성했다. 제목은 'Grium'(그리움)인데, 개인적으로 고뇌와 고통이 동반된 작품이다."

▶앞으로 국내외 연주 스케줄이 바빠질 듯하다.

"7월엔 피렌체 마죠 무지칼레 오케스트라, 8월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방송교향악단과 연주를 한다. 9월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곧바로 지휘자의 꿈을 꾸게 해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의 연주가 3차례 있다. 아마 올여름 연주들이 향후 몇 년간의 스케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다."

▶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지금은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어릴 땐 비닐하우스, 논밭이 있는 시골이었다.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그 시절 집 근처에 대구 출신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살았다. 예원학교를 진학할 때 도움 준 선생님이 '너희 동네에서 개천에 용 나듯 바이올린 잘하는 여자애 한 명이 서울에 공부하러 갔으니 너도 음악 공부하려면 서울 가야 된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이제 보니 김봄소리 바이올리니스트 이야기였다. 대구에서 좋은 선생님의 가르침도 받았는데, 영남대 진규영 교수님의 소개로 '대구국제현대음악제' 음악감독인 홍신주 선생님께 작곡을 배웠다. 또 좋은 교수님께 피아노 수업도 받았다."

▶지휘자를 꿈꾸는 후배 음악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답을 찾을 때 언제나 나 스스로를 연주자 입장에서 보려고 한다. '내가 지금 (특정 악기) 연주자이고,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은데, 그럼 그 소리를 내기 위해 저기 서 있는 지휘자(나)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동작을 해야 될까'를 많이 생각한다. 지휘라는 것이 요구되는 요소도 많고 악보도 복잡하기에 어려워 보이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오히려 가장 원초적이고 간단한 것이다. 지휘를 꿈꾸는 어린 음악가분이 있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꿈을 키워 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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