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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 '서낭당' |
나무의 분해와 조립을 통해 엿본 '민족의 시원(始原)'과 '생명의 기원'은 어떤 모습일까?
나무는 예로부터 고대 북방 대륙의 영역에서 대지와 하늘을 잇는 매개체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나무를 소재로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담아낸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봉산문화회관은 오는 10월6일까지 김일환 작가의 '2024 기억공작소Ⅲ 가가展(전)-無始無終(무시무종) :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를 회관 2층 4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김 작가는 나무를 주소재로 활용하면서 우리 민족이 오랜 기간 품고 살아왔던 정신세계의 근원을 찾아가는 설치 및 회화 작품을 보여준다. 김 작가는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등 고대의 신앙 및 종교의 상징들을 분해하고 재조합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지적하고 서로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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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환 작가가 자신의 작품 '신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설치작품인 '서낭당'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마치 중앙아시아의 숲 속에 서 있는 듯한 몽환적 느낌을 선사한다. 나무 박스를 쌓아 올려 서낭당의 돌무더기를 형상화 했으며 기단부의 가장 높은 곳에는 몽골의 서낭당 격인 '어워'의 형태가 자리 잡고 있다. 작품 중앙의 조형물 위로는 신성한 숲의 나무를 그린 천 조각들이 나부낀다. 천 조각 사이로 반야심경(般若心經), 천부경(天符經), 정선아리랑 등의 글을 적은 천이 함께 내걸려 신묘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생선을 담는 나무 박스와 나뭇가지를 조합해 만든 '고대'라는 작품에는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과 생명의 기원을 찾아가는 김 작가의 여정이 담겨 있다. 박스 표면에 자리한 고대의 암각화는 옛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품고 있고, 나뭇가지는 태초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이 육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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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4전시장 전경. |
거대한 당산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선 '신목'이라는 작품에도 눈길이 간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한 금빛 당산나무는 기복신앙의 대상으로서 신령스러운 느낌을 선사한다. 당산나무 옆 작은 집은 인간의 삶을 의미한다. 이 밖에도 '찔레꽃'과 '조상' 등의 작품을 통해 생명의 번성, 김 작가가 유년 시절 목격한 인상적 풍경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김 작가는 그동안 아리랑, 나무 시리즈 등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인 한(恨)을 즐거움과 밝음으로 해석해 왔다. 김일환 작가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시작과 끝이란 결국 같은 것이죠.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민족의 기원을 되새겨 보고 고대의 정신세계와 생명의 근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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