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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 활용 해외 여행 떠나거나
수당 붙는 알바로 용돈 벌기 선호
고물가에 취준생은 귀향비용 부담
새로운 방식의 전통문화 즐기기도
전문가 "추석 본래 의미는 기억하되
자연스러운 시대 변화 받아들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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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추석을 보내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 고향이나 부모님 댁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이들이 절반인 한편 휴식이나 여행,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를 계획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
대학생 윤성빈(21)씨는 올 추석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연휴는 주말을 포함하면 5일이나 쉴 수 있어서다. 윤씨는 "평소 방학이 아니면 2박 이상 여행을 떠나기 힘든데 연휴 기간이 길어 평소 만나기 힘든 고향 친구들과 일본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에서 상경한 직장인 장혜영(28)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추석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집콕'을 하며 휴식을 즐기기로 했다. 장씨는 "예전보다 모이는 가족 수도 줄고 차례도 거창하게 안 지내는 분위기다. 모처럼 찾아온 긴 연휴니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한 독서를 즐기며 집에서 쉬려 한다"고 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추석 풍경이 변하고 있다. 추석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이라는 인식이 깨지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연휴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연차를 더하면 최장 9일까지 쉴 수 있어 고향에 가는 대신 혼자 심신을 달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경향이 여전하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이 지난 3일 20~40대 625명을 대상으로 명절 연휴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8.2%가 고향이나 부모님 댁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집콕 휴식'(30.2%)과 '자격증 또는 취업 준비'(28.4%)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친구나 지인과의 만남'(20.6%), '1박 이상 여행'(19.2%)도 적지 않은 비중으로 나타났다.
차례에 대한 질문에는 58.1%가 '안 지낸다'고 답했다. 차례상에 대한 부담과 개인적인 시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쉬지 않고 오히려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나 근무를 하겠다는 응답자도 10.5%에 달했다. 명절 연휴 동안 반짝 하는 알바는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데 영향을 주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공휴일 수당이 붙어 평소보다 시급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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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 대신 휴식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건 추석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으로 나타난다. 실제 10명 중 3명은 모처럼 다가온 명절을 반기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에듀윌 조사에서 응답자의 64.2%는 '추석 연휴가 기다려진다'고 답했지만, 35.8%는 '추석이 오히려 스트레스'라고 밝혔다. 연휴를 스트레스로 느끼는 가장 큰 이유(복수 응답)는 '가족 및 친척들의 참견이나 간섭'(53.3%)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친척을 만나는 날인 만큼 명절엔 근황에 관한 질문이 쏟아진다. 대표적으로 '어느 대학 갈 거니' '취업(혹은 결혼) 언제 하니' '애 가질 때 되지 않았니' 같은 것들이다. 대부분 잔소리로 이어지는 질문이다. 이런 탓에 매년 추석마다 온라인상에선 우스갯소리로 '잔소리 메뉴판' 이미지가 등장한다. 비싼 메뉴일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잔소리다. '우리 딸은 전교 1등인데'(20만원) '눈 좀 낮춰봐'(30만원) '결혼 슬슬 해야지'(50만원) 등이 있다. 장씨는 "SNS에 떠도는 잔소리 메뉴판을 접한 적이 있는데 웃기지만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아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라고 했다.
지속되는 고물가와 취업난도 한몫한다. 올해 추석 연휴 기준 서울(김포)에서 부산(김해)까지 비행기로 왕복하려면 20만원은 족히 내야 한다. 비교적 저렴한 KTX 기차표를 구하려면 연휴 한 달 전부터 '예매 전쟁'에서 성공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 한 푼이 아쉬운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선 귀향이 망설여진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취업 준비생 A씨는 "KTX 티켓팅에 실패해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데 교통 체증으로 가는 데만 8시간은 걸릴 듯하다. 비행기를 타면 빠르겠지만 편도 10만원이나 하더라"며 "시간 면에서나 비용 면에서나 취업 준비생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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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추석의 전통적인 의미가 옅어지고 있지만 명절의 중요성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여전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추석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직장인 공성은(30)씨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각자의 상황에 맞게 명절을 보내는 친구들이 늘어난 것을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보내는 방식만 다양해졌을 뿐 (추석이) 가족과 함께하고 전통적인 날이라는 건 다들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 차원에서 전통의 가치를 계승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가유산청은 추석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문헌 조사,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명절을 무형유산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봤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우리 명절은 가족과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윷놀이, 떡 만들기 등 다양한 무형유산이 전승돼 오며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추석의 본래 의미는 기억하되 합리적인 선에서 변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명절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구조와 생산 양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통을 따르는 것을 두고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접근하기보다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게 마땅하다"며 "조상에 대한 감사, 농·어민들의 노력을 기억하는 것은 좋지만, 개인에게 큰 부담이 가는 일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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