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珍의 미니 에세이] 렛 잇 비(Let IT Be)

  •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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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08  |  수정 2024-11-08 08:11  |  발행일 2024-11-08 제14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던 일이

어느땐 기적처럼 저절로 풀려

세상엔 저마다의 순리 있는 듯
[少珍의 미니 에세이] 렛 잇 비(Let IT Be)
솔로몬도 아인슈타인도 해결 못 할 문제가 생겼다. 며칠 전 나에게 맞닥뜨린 난제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밥공기 두 개가 딱 들러붙어 있다. 손으로 떼어도 안 되고, 돌려봐도 안 되고, 비틀어도 말을 안 듣는다. 조가비가 입을 다물 듯 두 개가 붙어 꼼짝을 않는다. 냄비에 물을 끓여 담가도 보고, 반대로 찬물로 씻어 봐도 헛일이다. 나 몰래 즈네들끼리 작당을 하여 업고 업히어 떨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팽창'에 대해 머리를 짜본다. 성급하여 한꺼번에 뜨거운 물에 넣은 것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두 그릇이 동시에 팽창하여 결속을 다졌을 수도 있다. 속 것에는 찬물을, 바깥 것에는 뜨거운 물을 주어 본다. 헛일이다. 내가 허둥대는 동안 면역이 생긴 것일까.

궁리 끝에 주방 세제를 두 그릇 틈 사이에 넣어 보았다. 미끄럼을 타고 속 것이 빠져나오기를 기대한 것이다. 허사였다. 허사이기만 한가. 오히려 내가 이러저러한 방법을 동원한 사이 즈네들끼리 더욱 꽉 조여들고 있는 것 같다. 처음보다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살림 9단에게도 물어보고, 과학선생하는 친구에게도 전화해보고, 인터넷에도 들어가 보았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아이디어라고 내어 놓은 것 또한 상식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성질 같아서는 확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밥공기는 포트메리온이었다. 주부들의 로망이라고 하는 포트메리온. 작년 내 생일 때 딸들이 거금을 들여 홈 세트로 마련해 준 게 아닌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업고 업힌 두 밥공기를 통째로 씻어 싱크대 위에 엎어 놓았다. 좋은 말 할 때 잘 의논하여 그만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다음 날 아침. 기적이 일어났다. 밤 사이 무슨 일인지 두 밥공기가 저들 스스로 떨어져 돌아앉아 있는 게 아닌가.

누가 누구를 밀어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 온갖 수단을 동원해 떼어 놓으려 애쓸 때는 그토록 붙어서 속을 썩이더니 밤새 무슨 변덕으로 갈라서기로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순리와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얼른 하나씩 따로 씻어 선반 위에 단정히 올려 놓았다.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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