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18> 이병철 시대의 경영자들

  • 홍하상 전경련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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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21  |  수정 2025-03-21 08:23  |  발행일 2025-03-21 제15면
초일류 기업 뒤엔 전설의 샐러리맨들이 있었다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이병철 시대의 경영자들
1938년 삼성을 설립, 1987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간 삼성을 키운 이병철(오른쪽 둘째) 회장은 한국형 경영의 교과서였다. <국가기록원 제공>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이병철 시대의 경영자들
안양CC 개장식에 참여한 이재형(왼쪽부터), 유진산, 이병철. <삼성그룹 제공>
이병철 시대에는 유능한 경영자들이 많이 나왔다. 이창업 삼성물산 사장, 제일제당의 사장을 지낸 경주현, 삼성물산 부회장 등을 지낸 이필곤, 전자와 반도체의 신화를 만들었던 삼성전자 부회장을 역임한 강진구, 김광호 삼성전자 전 부회장,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삼성생명 회장을 지낸 이수빈, 삼성중공업 및 삼성항공 부회장 등을 지낸 이대원과 정재은 삼성물산 부회장은 삼성에서 평생을 보낸 전문경영인이다. 정재은 부회장은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삼성물산을 키워놓았고 일찍이 이병철 회장의 눈에 들어 이병철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백화점 회장의 남편이 됐다.

삼성생명 업계 1위로 끌어올린 이수빈
기업 인수·경영정상화에 뛰어난 수완
서울대 공대출신 전자업계 신화 강진구
불모지 반도체 초우량기업으로 키워
최장기 비서실장 소병해·경리통 이대원
뛰어난 인재들 훗날 이건희 시대 열어

◆샐러리맨의 우상 경주현

경주현은 1976년 2월 약관 36세의 나이에 중앙개발(현재의 에버랜드) 대표이사에 올랐다. 당시 그는 용인자연농원을 건설하라는 이병철 회장의 지시를 받고 새벽 5시에 출근, 현장을 누비면서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가, 안 하고 있는가를 점검하기 위해 몸을 숨긴 채 포복으로 산에 오르는 열성을 보였다.

용인자연농원의 건설이 순조롭게 끝나자 이어 1978년에는 삼성의 주력기업인 제일제당 사장을 맡게 된다. 이어 경주현은 삼성중공업 부회장까지 올랐으나 한때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서 롯데그룹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다시 삼성에 복귀 삼성종합화학 회장을 거쳤다. 경주현은 한국의 샐러리맨들에게는 한때 우상이었다. 1970년대를 현대그룹의 이명박, 삼성전자의 강진구가 풍미했다면 1980년대는 단연 경주현이 모든 샐러리맨들의 우상이었다.

◆보험업계 1인자 이수빈 회장

이수빈은 삼성생명 회장을 지내고 현재는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데 그는 왕년의 삼성생명을 보험업계 1위로 끌어올린 삼성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제일제당에 입사한 후 부산공장 근무를 자원하면서 삼성맨으로서의 생활을 출발했다. 그가 굳이 지방 근무를 자원한 것은 현장 사정을 익히기 위한 것이었다. 1년 후 서울 본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후 6년간 경리, 기획, 관리 부서 등을 거치면서 일을 배웠고 1970년에는 삼성그룹 내의 요직 중의 요직이라는 제일제당 경리과장을 거쳤다.

이수빈의 장점은 계수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기억력이 좋다는 것이다. 그가 국세청 감사를 받았을 때 국세청 관계자들 앞에서 회사의 재무제표 현황 숫자를 하나도 틀림없이 외웠다가 답변해 국세청 관계자들을 질리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72년 그룹 비서실 관리 담당 간부로 근무할 때는 그룹의 21세기 경영플랜인 제2차 삼성 5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며 이로 인해 5년간 삼성그룹의 매출이 1천36억원에서 9천663억원으로 무려 930%가 늘어나자 이병철 회장은 그를 각별히 신임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입사 12년 만인 약관 38세에 제일모직 대표이사까지 올랐고 동기생 중에서는 늘 선두주자로 달려왔다. 제일모직, 제당, 정밀, 생명보험, 증권 등의 대표이사를 차례로 지냈고 이병철 회장 사후인 1991년부터 3년 동안은 그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1994년부터는 삼성그룹 내의 소금융그룹 회장을 맡아 공격적인 경영에 앞장서서 국제증권을 인수, 삼성증권을 만들었으며, 삼성할부금융을 삼성캐피탈로 환골탈태시키기도 했다. 또 국제선물을 삼성선물로 재탄생시켰으며 동양투신을 사서 삼성투신증권으로 바꾸는 등 기업의 인수와 경영정상화에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사장만 27년을 지내서 직업이 사장이라는 말과 함께 불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홍하상의 기업인 열전] 삼성가 이야기  이병철 시대의 경영자들
이병철 시대에는 유능한 경영자들이 많이 나왔다. 물가에 앉은 이병철. <문선호 작가 촬영>
◆경리통 이대원

이수빈 회장과 서울대 상대 동기이자 입사 동기생인 이대원 회장도 경리통이다. 삼성사관학교라 불리는 제일모직의 경리과장을 거치고 이후 모직, 건설, 전자, 제당에서 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1987년에는 출신 기업인 제일모직 대표이사에 올랐고, 1992년부터는 삼성항공과 삼성중공업, 삼성시계 등 3개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기계그룹의 총책임자를 역임했다. 꼼꼼한 경리통이면서도 시원시원하게 통이 커서 부하직원들이 잘 따른다는 평을 받았고, 사무실보다는 현장을 즐기는 체질이라서 공장을 자주 찾았다. 능력도 출중해 즉석에서 노트북으로 결재를 하는 등 일처리가 신속한 경영인이었다. 이대원 회장과 같은 6기생으로 삼성물산의 생활문화부문장 겸 유통본부장을 지낸 박홍기 사장은 제일모직 상담역으로 물러났으며, 건설부문의 최훈 사장은 삼성물산의 고문을 지내다가 은퇴했다. 유현식 제일모직 대표는 삼성종합화학 사장을 거친 후 현업에서 물러났다.

◆전자업계의 산증인, 강진구

강진구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국내 전자업계의 산증인이자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30년간 한국 전자업계를 이끌어온 살아있는 신화로 통한다.

1964년 동양방송에 입사해 처음에는 TV 방송 기자재를 만드는 일을 하다가 이병철 회장의 지시에 따라 1973년부터 삼성전자를 맡아 적자였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면서 그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 후 상무에서 대표이사 전무까지 승진하는데 3개월, 전무가 된 지 9개월 만에 다시 사장으로 승진했다. 한국에서는 가장 초고속 승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후 강진구 회장은 삼성전관, 전기, 정밀 등 주로 기기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를 지냈고 1988년부터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통신이 통합되면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도체를 맡아 일약 최우량 기업으로 회사를 발전시켰다. 그 공로로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1990년에는 회장으로 승진했다. 1995년 삼성그룹이 신설한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로 헌액된 전문경영인이다.

◆'가자 현장으로' 김광호

김광호 삼성전자 전 부회장도 강진구 회장과 같은 TBC 출신으로 35년간 줄곧 삼성전자, 반도체에서만 근무해온 반도체 전문가였다. 이병철 회장이 일본 오쿠라호텔 505호실에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손에는 바로 김광호 당시 상무가 작성한 보고서가 쥐어져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그는 반도체 분야의 야전사령관으로 반도체 개발에만 줄곧 매달려왔다.

김광호 또한 철저한 현장중심의 경영인으로, '가자 현장으로'는 그의 유명한 트레이드 마크이다. 김광호는 1994년부터 95년까지 삼성전자의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4메가 D램 1억5천780만개를 공급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이어 1995년에도 16메가 D램을 2천300만개 공급해 역시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로 인해 삼성전자는 1995년 3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남겨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데 큰 공헌을 했다. 1995년 당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증권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어느 시중은행에서는 그의 행동반경을 관찰하는 전담맨을 둘 정도였다.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 삼성전자 주식값이 오르고 내렸기 때문이다.

◆막강한 2인자 소병해 비서실장

이병철 시대의 경영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이 소병해씨이다. 소병해는 1970~1980년대 이병철 회장의 최측근으로 삼성그룹의 최장기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비서실장을 지냈을 때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이병철 회장의 강력한 신임을 받았고, 삼성 비서실이 국가정보원보다 더 빠른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겸 부회장은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제일모직의 경리과장, 관리부장을 거쳐 이병철 시대 말기인 1982년에 비서실 팀장으로 발탁됐다. 1984년에는 제일제당의 관리 담당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1985년 다시 비서실 재무팀장, 1992년 9월에는 비서실 차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이학수는 삼성화재와 제일제당의 대표이사를 거쳐 1991년 비서실로 복귀했다. 수치에 밝고 꼼꼼하며 치밀한 성격으로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로 불린다.

또한 훗날 손욱 삼성전기 회장, 삼성석유화학의 허태학 사장, 삼성재팬 정준명 사장, 삼성중공업의 김징완 사장, 제일기획 배동만 사장 등이 모두 이병철 시대에 삼성에 들어와 훗날 이건희 시대를 이끈 경영자들이다.

이들은 이병철 시대에 경영을 배워 이건희 삼성 시대를 열었고, 삼성전자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리는 저력을 발휘한다. 이제 서서히 이병철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1938년 삼성을 설립, 작고하던 1987년도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을 삼성을 키운 이병철 회장은 한국형 경영의 교과서였다. 작가·전경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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