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의 시와 함께] 조해주 '평일'

  • 조해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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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07  |  수정 2025-04-07 07:08  |  발행일 2025-04-07 제21면

[신용목의 시와 함께] 조해주 평일
시 인

양파라고 했습니다

어지러움을 느끼는 눈동자가 수만 겹이 되겠지만

이구아나라고 했습니다

혀와 시선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겠지만

아무리 달라붙어 있어도

옷걸이가 옷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집안 여기저기

널어두었던 수건이 모두 날아가고

태풍 지나간 자리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합니다 조해주 '평일'

평일은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하루인가. 평일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차고 매끈한 피부, 하얗게 열린 눈동자, 얼려놓은 공포 같은, 양파의 어지러움은 이구아나의 엇갈림과 연결된다. 양파와 이구아나. 이토록 다른 것들은 또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 이토록 가까운 것들은 왜 서로를 바꿀 수 없는가. 옷걸이는 왜 옷을 입고도 외출하지 못하며 옷은 왜 옷걸이에게 텅 빈 몸을 주는가. 바람을 만드는가. 시의 전반부는 수건으로 건너간 일상의 얼룩들을 문맥 뒤에 가득 채워놓은 듯하다. 그것을 빨아 말리며 그저 살아내고자 하는 순간으로 깨끗해지는 집. 그러나 모든 평온은 태풍의 이후이다. 양파 같은, 이구아나 같은 눈동자 속에서 태어나는 하얗게 질린 그 태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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