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준기자.
국민의힘이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 김문수 전 장관을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한 후 수일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자고 나면 당 대선 후보가 바뀌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수 지지자들은 시끄러운 정치권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뭐하는 거냐"고 비판을 쏟아냈다.
김 후보와 한 전 총리는 지난주 두 차례에 걸친 단일화 협의를 진행했다. 김 후보는 자신이 3번의 경선을 통해 선출된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점을 강조하면서 한 전 총리가 입당한 뒤 단일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 전 총리는 선관위 후보 등록이 임박한 만큼 합의가 먼저라는 입장을 보였다. 김 후보는 '정당성'을, 한 전 총리는 '대의'를 내세우면서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고 회동에선 어떤 결과도 도출해내지 못했다.
점입가경으로 국민의힘 지도부는 후보 등록 전 단일화가 우선이라며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알량한 대선 후보 자리 지키는 모습이 한심하다"며 자신들이 경선으로 뽑은 후보를 저격했다. 지도부는 끝내 지난 10일 새벽엔 초유의 후보 교체를 단행하며 더 큰 혼란을 가져왔다.
당원 투표에서 한 전 총리로 대선 후보를 변경하는 안건이 부결되면서 결국엔 김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최종 결정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보수 통합, 당과 지도부의 신뢰 등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지도부 때문이다. 가히 분탕질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다. 단일화 진행 과정에서 지도부는 보수의 가치 중 하나인 '원칙과 절차'를 무시했고, 낙하산 인사로 대선 후보를 만들려는 작태를 보였다. 이번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는 변명을 했지만, 원칙과 절차가 지켜져야 보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은 잊은 듯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치르면서 보수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다. 건강한 보수는 온데간데없고 극우가 득세하고 있다. 보수를 대표한다는 공당인 국민의힘도 비판엔 귀를 닫고, 민심을 읽는 데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라면 보수는 공멸하고 만다. 대선 패배는 물론이고 앞으로 국민의힘이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의힘이 이번 대선에서 보수세를 집결시키고 새롭게 거듭나려면 제대로 된 사과와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당은 이전과 다른 변화를 약속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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