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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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16 09:21  |  수정 2025-05-16 09:22  |  발행일 2025-05-16
[주말&여행]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

대항 외양포 포진지. 두 개의 커다란 아치형 동굴은 엄폐막사로 대나무 숲으로 덮여 있다. 언덕처럼 위장해 놓은 건물은 탄약고다. 3동의 탄약고 사이에 포대 터 3곳이 남아 있다.

가덕도는 부산 최남단에 있는, 부산에서 제일 큰 섬이다. 진해만과 대한해협 사이에 위치해 있어 통일신라시대 대당 무역의 주요 기항지 중 하나였고, 조선시대에는 해안방어를 위한 조선수군의 주둔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섬은 남북으로 길고 전체가 거의 산인데, 남쪽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그 남쪽 끝이 대항동으로 대항, 새바지, 외양포 등의 자연마을이 각각 작은 만에 기대어 자리한다. 대항과 새바지는 연대봉과 국수봉 사이 잘록한 목의 동서 해안에 위치한다. 외양포는 목의 남쪽, 국수봉 서쪽 아래다. 20세기 초 일본과 러시아가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웠을 때 일본은 우리 남해안 일대에 포진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군사 거점으로 점찍은 곳이 대항 외양포였다.

1904년 러일전쟁 일어나자 외양포 등 요새화

진해 있던 사령부 이전…1936년 기념비 세워

장교사택·내무반·탄약고·우물터 지금도 남아

대항항에도 동굴 포진지…관광자원으로 개방

연대봉 정상 봉수대 임진왜란때 첫 봉화 올려

[주말&여행]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

대항항 포진지 동굴. 태평양전쟁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군이 결사항전을 위해 1944년 말부터 파놓은 동굴요새로 현재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어 있다.

◆ 대항 외양포 마을

내항에 세 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다. 방파제 바깥쪽은 낚시꾼무리가 차지했다. 붉은 토끼풀이 흐드러진 자갈 해변을 커다랗고 순한 리트리버가 설렁설렁 걷는다. 마을과 해변사이, 해안 길이 좁다. 해변 쪽에는 높직한 방파벽이 서 있고 마을 쪽은 둔덕진 숲이어서 해안 길은 꼭 참호 같다. 보랏빛 분홍의 멍석딸기꽃과 하늘하늘 어여쁜 갯메꽃이 그 좁은 길가 양지에 그득하다. 아마, 바다에서 이 마을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외양포 주민들을 쫓아내고 포진지 공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마을에는 병영을 구축하고 배후 국수봉 산자락에는 말이 다닐 수 있는 '말길'을 만들어 관측소와 산악 보루 등 군사 지원 시설을 배치했다. 그리고 1905년 진지가 완공되자 경남 진해에 있던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경술국치 이전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몇 채의 집이 띄엄띄엄 서 있다. 그들 사이로 수목이 울창하고 작은 밭들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다. 병꽃나무의 핑크색 꽃들과 짙은 주황의 금영화와 구골나무의 반들거리는 이파리에 눈길이 가 닿는 동안 온갖 새소리가 난무한다. 그야말로, 난무한다. 일본군 사령부의 병영이었던 마을에는 붉은 벽돌로 쌓고 시멘트를 바른 당시의 우물터가 여럿 남아 있다. 4개의 우물터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 붉은 벽돌로 네 개의 기둥을 쌓고 지붕을 올린 우물 하나는 거의 온전하다. 기둥에 마늘과 양파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두레박은 보이지 않지만 우물은 열려 있고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수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지금도 사용하는 것 같다.

맞은편에는 철제 슬레이트로 벽을 두른 일본식 가옥이 있다. 에어컨 실외기와 온갖 살림살이들이 현재 사람이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제 패망 후 마을 일대는 국가에 귀속됐다. 장교사택과 사병내무반 등 군사 시설로 쓰인 큰 건물은 민간에 분할 임대되었는데 수리와 일부 개조만 가능했다고 한다. 한 건물에 지붕 색깔이 조각보처럼 나뉘어 있다. 이는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살고 있음을 나타낸다. 사병 내무반이었던 건물에는 무려 4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자그마한 박공건물의 열린 문 속에 하늘색 타일로 마감된 욕조가 보인다. 일본군의 공동목욕탕이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일본군 군부대 흔적은 섬 곳곳에 남아 있다.

포진지는 마을 위쪽에 자리한다. 입구에 '사령부발상지지' 비석이 있다. 일본군이 외양포에 주둔한 사령부 부대를 기념하기 위해 1936년 세운 것이다. 그 앞에는 일본군이 사용했던 화장실 터도 남아 있다. 두 개의 커다란 아치형 동굴은 작전 상황실로 활용된 엄폐막사다. 막사 위는 대나무 숲으로 덮어 은폐했다. 언덕처럼 위장해 놓은 건물은 탄약고다. 3동의 탄약고가 있고 그 사이에 280㎜ 유탄포 포대 터 3곳이 남아 있다. 1곳당 2문의 포가 설치됐다. 포탄이 날아가는 쪽에는 5~6m 높이의 토성 형태 제방을 쌓아 포진지를 엄폐했다. 그들은 광복 때까지 41년 동안 눌러앉아 있었고, 마지막에는 포대 1개 대대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제방에 오르면 바다가 보인다. 제방 아래는 야생화 꽃밭이다. 제방에서 도로건너 데이지 꽃밭을 가르며 '말길'이 산을 오른다. 1904년 개설한 산길과 배수로의 견치석 돌쌓기가 거의 원형으로 보전되어 있어 '말길'은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울창한 수목들 속에 몇 개의 지붕이 드러나 있다. 갯마을이 아니라 숲 마을 같다.

[주말&여행]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

외양포 마을에는 붉은 벽돌로 쌓고 시멘트를 바른 당시의 우물터가 여럿 남아 있다. 맞은편 철제 슬레이트로 벽을 두른 일본식 가옥에는 현재 사람이 살고 있다.

◆ 대항동 대항마을과 새바지 마을

외양포에서 북쪽으로 곶 하나 넘으면 대항마을이다. 대항동의 중심 마을이고 가덕도 관광의 중심이기도하다. 항도 크고 배도 많고 주민도 많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다. 가장 이름난 것은 '대항항 포진지 동굴'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패색이 짙어가던 일본군이 결사항전을 위해 1944년 말부터 파놓은 동굴요새다. 대항항 북쪽 벼랑지대에 길게 놓여 있는 데크 탐방로를 따라 가면 동굴을 볼 수 있다. 현재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어 5개의 동굴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 3개의 동굴은 하나로 연결되어 전체 175m에 달한다. 나머지 2개 동굴은 길이가 10m 안팎이다. 진지 구축에는 강원도의 조선인 탄광 근로자들이 강제 동원됐고, 그들 중 돌아간 사람은 없다고 전한다.

[주말&여행]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동

대항마을 전경. 대항동의 중심 마을이고 가덕도 관광의 중심이기도 하다. 북쪽 벼랑지대에 길게 놓여 있는 데크 탐방로를 따라가면 대항항 포진지 동굴을 볼 수 있다.

대항마을에서 동쪽으로 언덕을 넘으면 새바지 마을이다. 새바지는 샛바람(동풍)을 받는다는 뜻이다. 왼쪽의 흠칫 높은 산이 연대봉, 오른쪽의 큼직한 덩어리는 국수봉이다. 새바지는 두 봉우리 사이의 조그만 만이다. 국수봉 아래 절벽에 자그마한 초소가 올라서 있다. 그 절벽의 아래쪽에 세 개의 동굴이 빠끔하다. 이곳 역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포진지의 흔적으로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이 외에도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에 여러 인공동굴이 있었는데 1970년 가덕도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해안표식이 될 수 있는 가시권시설이라 하여 군에서 폭파 철거했다고 한다. 동굴 앞 데크에 서면 연대봉 정상의 낙타바위가 선명하다. 저 연대봉 정상 봉수대에서 1592년 4월 13일 대마도에서 부산포로 침략해오는 왜군 함대를 최초로 발견하고 봉화를 올렸다.

집들은 경사진 벼랑에 붙어 있다. 새바지 앞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청록이고, 바다 건너 마주보이는 다대포는 희부윰하다. 흰 등대 하나 오롯이 선 내항에는 10여 척의 작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다. 방파제 너머 오뚝한 갯바위는 '베루바우'라고 부른다. '바라본다'는 의미라는데 이해할 깜냥은 안 된다. 방파제에 낚시꾼이 하나였는데 이제 셋이다. 새바지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고등어, 전갱이 등이 잘 잡히고 학꽁치 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단다. 그래서 낚시 가게가 많다. 낚시가게 옆 들풀 제멋대로 자라난 길에 새 그림과 청바지 그림이 서 있다. 한참 들여다 보다 피식 웃는다. 아하, '새바지'구나.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방향으로 간다. 칠원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부산, 북창원 방면, 진영분기점에서 부산방면, 진례분기점에서 105번 남해고속지선 부산항신항 방향으로 가다 진해IC로 나간다. 거제방향으로 약 8.8km 직진하다 거가대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가덕, 경제자유구역청 방면으로 우회전해 6.6km 직진, 가덕톨게이트 직전에 대항 방면으로 빠져나가면 된다. 대항전망대 지나면 회전교차로가 나타나는데, 3시 방향은 대항, 9시 방향은 새바지, 12시 방향은 외양포다. 대항마을 초입, 외양포마을 초입에 무료 공영주차장이 있고 세 마을 모두 항구 쪽에 주차 가능하다. 대항포진지동굴 개방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며 입장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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