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교장·교감할 선생님이 없다

  •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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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5-28  |  수정 2025-05-28 07:06  |  발행일 2025-05-28 제26면
"민원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

과중한 업무 탓에 승진 기피

교육현장 리더가 사라져 가

무한책임 묻는 문화 없애고

권한·보수체계 재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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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교직의 꽃'이라던 교장·교감 자리, 이제는 가시밭길이 되었나 보다. 교장 승진이 가능한데도 스스로 그만두는 교감이 늘고 있다. 지난해 국공립학교 교감 중 2천581명이 명예퇴직을 택했다.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를 단순한 승진 기피 현상으로 보기엔 사안이 심각하다. 학교를 이끌 교육 리더가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 즉 교육계 리더십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문제는 과중한 업무와 무한 책임이다. 교장은 말할 것도 없고, 교감은 15개가 넘는 법정위원회와 30개 가까운 비법정위원회를 이끌며 학사 운영, 인사, 민원, 안전, 갈등 해결 등 학교 업무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진다. '민원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라는 교장·교감의 말이 과장이 아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의 주요 역할은 '가르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육에 더해 보육, 건강, 안전, 복지까지 떠안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개별 학생에 관한 관심은 더 필요해졌지만, 교장·교감의 실질적 권한은 오히려 줄었고 책임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높아진 시민 의식과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학교 관리자들은 교육과정 운영보다 민원 처리와 갈등 조정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학교의 민낯이다.

현실적인 이익 없이 리더 역할만 요구받는 구조도 큰 문제다. 교직은 단일 호봉제이기에 관리자 승진이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책임은 늘었지만, 보상은 제자리다. 휴업일, 방학에도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관리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교직원이 늘고 있음에도 이를 제도적으로 통제할 권한도 없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다.

이쯤 되면, 관리직을 꺼리는 현상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방치할 수도 없다. 학교는 아이들만 성장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공동체다. 그 중심을 잡아 줄 리더가 없다면, 학교는 제 길을 잃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교직 전반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OECD가 발표한 '2023년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는 충격적이다. 한국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조사 대상 15개국 중 12위에 그쳤고, 교원의 핵심 역량도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언어능력은 16개국 중 9위, 수리력은 10위, 문제 해결력은 12위였다. 10년 전과 비교해도 언어능력은 24점, 수리력은 10점이 떨어졌다. 반면 이웃 일본은 교사 능력 모든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리더십 붕괴뿐 아니라, 교사 전체의 전문성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면 첫째, 교장·교감의 권한과 책임을 재정립해야 한다. 지도 범위를 벗어난 일까지 관리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실질적 권한이 없는 직책에 책임만 지우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둘째, 승진과 보수 체계를 시대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직급별 호봉제 도입 등 관리자에게 걸맞은 처우 보장이 필요하다. 셋째, 교육 현장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는 공장처럼 획일적인 기준으로 운영될 수 없다. 넷째, 사소한 갈등까지 법으로 해결하려는 사회 분위기도 바꾸어야 한다.

교육 리더가 사라진 학교에서는 결국 아이들의 미래도 흔들린다.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 시민 모두의 일이다.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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