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환경 개선” “경영난 가중”…노동계-산업계 팽팽한 긴장감

  • 조윤화·구경모(대구)
  • |
  • 입력 2025-06-08 20:24  |  발행일 2025-06-08
이재명 정부 출범 초부터 노동 3대공약 속도전
노란봉투법, 법정 정년 65세 연장, 주 4.5일제 근무제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민주노총 대구·경북지역본부가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영남일보DB

2023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민주노총 대구·경북지역본부가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벌였다. 영남일보DB


이재명 정부가 갓 출범하자 노동계-산업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 대통령이 노동과 관련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법정 정년 연장, 주 4.5일 근무제 등 도입이 임박했단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윤석열 정부시절 거부권 행사로 막아놨던 노란봉투법은 이 대통령 임기 초 속도감 있게 추진될 전망이다.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도입도 본격적인 사회적 합의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침체, 부진한 신산업으로의 전환 등으로 신음하는 지역 산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제도 도입 취지와 목적엔 공감하면서도, 방법과 속도에 있어선 지역 특성 및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달라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란봉투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현행법상 원청업체가 하청기업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바꾸고, 원청업체도 사용자로 규정하는 게 핵심골자다. 파업이 위법 판정을 받아도 조합원 개인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가 이뤄지는 걸 막기 위해 책임 범위를 제한하는 조항도 들어있다.


이 법안은 21·22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좌초됐다. 하지만 올 들어 민주당이 다시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 대통령 당선으로 '도입이 임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계는 환영일색이다.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은 "조합원이 월급 수십만 원을 받으면서도 수억 원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는 현실은 명백한 괴롭힘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라고 했다.


노동계는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누적되고 있다고 본다. 이에 이번 법 개정은 사법 판단의 흐름을 입법이 뒤따르는 '정상적 수순'이라고 여긴다.


일각에선 노란봉투법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 입법'이라며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특히, 법조계는 사용자와 근로자에 대한 개념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이 사용자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해 원청까지 직접 책임을 지게 하는 구조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 법적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해치는 입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노동쟁의 대상을 단순한 '근로조건 결정'에서 '해석·적용' 등으로까지 확대하면, 사용자 경영권에 대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사용자의 직업의 자유와 재산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에 포함된 '조합원별 손해배상 책임 제한' 조항도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차 교수는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 원칙과 충돌하며,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면책에 무게를 둔 것"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60세→65세 법정 정년 연장


이 대통령은 저출생·고령화 대응 방안 중 하나로 법정 정년 연장을 공약했다.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높이고,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정년을 일치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발맞춰 민주당은 지난 4월 '회복과 성장을 위한 정년연장 TF'를 출범하고 노·사 및 시민단체 논의를 거쳐 올해 중 입법화할 계획이다.


지역 경영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상길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대부분 기업이 호봉제를 채택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기업 부담으로 남는다"며 "청년 고용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고 했다. 이어 "대구 제조업계는 청년 수급이 원활치 않아 '은퇴 후 재고용' 방식을 도입 중이다.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인건비 부담은 줄일 수 있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동자들은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정년을 앞둔 대구의 한 제조업체 직원은 "이제는 100세 시대다. 정년에 따른 퇴직 문제는 '나이'가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작업 능률을 높일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고 가정할 때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청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데, 노년층의 문제도 들여봐줬으면 한다. 다만, 정년 유연화로 피해를 보는 젊은 세대들이 절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승준 대구대 교수(경제금융통상학과)는 "국민연금 수급 이전의 소득 공백 문제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일본의 경우 기업에 정년 연장과 '퇴직 후 재고용' 중 선택 권한을 주는 식으로 접근했다. 기업 역시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 4.5일 근무제


이재명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일환이다. 이미 근로시간을 단축한 지역기업들은 정책 취지에 대해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정원 YH데이타베이스 이사는 "도입 초기엔 일주일치 업무를 5일이 아닌 4일, 4.5일 만에 끝낼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다"며 "하지만 실제 3년간 운영해본 결과 업무 효율성은 개선됐다. 직원 만족도는 높아졌고, 퇴사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과 가정 사이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제도가 결국 업무 성과 향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업종이나 직무 형태 차이를 고려한 유연함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존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제도에 적응했지만, 신입들은 자기 주도적 업무 역량이 충분치 않아 오히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었다. 적응 기간과 맞춤형 운영 기준 없이 제도를 일괄 도입하는 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역 경영계에선 4.5일 근무제 도입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덕화 대구경영자총협회 상무는 "4.5일제를 시행하면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현장은 이미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건비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지역 중소기업이 바라는 건 새 제도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기존 근로시간 제도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정 상무는 "탄력근로제 확대나 유연근무제 보완 등을 통해 현장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생산직은 일한 시간만큼 소득을 얻는 구조라서 노동시간 단축을 반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이 곧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현실에선 이미 '투잡' '쓰리잡'을 뛰는 노동자들도 적잖다"고 말했다.



기자 이미지

조윤화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구경모(대구)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