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260만표의 위력’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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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23  |  발행일 2025-06-23 제22면

신문사에는 전국 주요 도시의 일간신문이 배달된다. 광주시의 유력 일간지를 훑어보다 큰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재명 정부, 실무중심 라인에 호남 인재 속속 배치'. 산자부 1차관, 기재부 2차관, 외교부 1차관에 호남 출신들이 등용됐고, 앞으로 대통령실과 주요 부처 장·차관 인사에서도 발탁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정권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고 느꼈다. 지역출신이란 대개 그 지역 고교 졸업 여부가 가늠자이다. 호남의 논리는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역차별을 받았고, 이재명 대통령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지역감정'은 부인할 수 없는 변수다. 역대 선거에서는 더 했다. '우리가 남이가' 를 비롯해, '정권을 가져오려면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는 자조도 유행했다. 특히 1인1표가 전국적으로 누적돼 승패가 갈리는 대선에서 지역감정은 극대화됐다. 대구출신 대선후보가 호남에 가서는 돌팔매질을 당하고, 호남 출신 후보는 TK(대구경북)에서 득표율 10%를 못 넘겼다. '1980년 5·18 광주사태',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화된 그 사건은 지역감정의 아픔을 헤집었다.


지난 6·3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49%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언론은 특정 지역의 후보 득표율이 대충 높으면 빨강 아니면 파랑으로 덧칠했다. 근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이재명 후보는 전국에서 49%, 1천728만표를 얻어 김문수 후보(41%, 1천439만표)를 289만표 차이로 이겼다. 2022년 '윤석열 대 이재명'의 표 차이는 24만표에 불과했다. 2025년 이재명 승리에 호남은 절대적 견인차였다. 전라남북도와 광주에서 무려 260만표를 더 얻었다. 전국 격차에 육박했다. 흔히 서울이 승부처이고 충청도 표심이 중요하다고 하나, 실은 그렇지도 않다. 충북의 경우 이재명 후보는 불과 4만7천표를 더 얻었다. 충남북과 대전 다 합쳐 18만표차이다. TK에서 김문수(67%)는 무려 144만표를 앞섰다. 대통령 선거의 대결축은 여전히 '호남 대 TK' 구도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호남 유권자는 출신이 다른 후보에게 80% 넘는 몰표를 몰아줬다. 지연 혈연을 따지는 고전적 의미의 지역감정은 희석된 지도 모른다. 대신 TK와 호남의 정치성향은 비석처럼 좌우 대척을 형성한다. 정치적 가치관이 딴판이다. 물론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어느 국가, 어느 도시든 독특한 정치성향이 있기 마련이다.


6월4일, 대선 다음날 대통령 취임식 광경이 떠오른다. 대통령과 나란히 연단에 앉은 국가 서열 최상급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희대 대법원장, 이주호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자리했다. 공교롭게도 다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언뜻 윤석열 정권은 친(親)TK 였을까 란 상념이 들었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도 대통령 선거에 따른 자리 바뀜이 극심하다. 혹자는 대통령이 되면 1만개 이상의 공적 준공적 자리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최소한 몇 천개는 될게다. 문제는 그 자리가 대략 구름위에 있다는 점이다. 숱한 자리가 지역출신에 돌아가도 몰표를 준 그 지역이 결정적으로 도약한 흔적은 별로 없다. 인재와 돈이 서울로 밀려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수도권 초집중을 떠올려 보라. 우리는 악다구니 처럼 전쟁 같은 대선에 몸이 달았지만, 사실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자리 교체를 놓고 쓸데 없이 용을 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호남, 이재명 260만표 격차


TK대통령에 인재등용 기대


지역감정 퇴조, 성향은 고착


대선의 본질, 결국 자리다툼


평범한 유권자와 별개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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