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르포] 72세 폐지老人의 등이 ‘悲’에 젖는다

  •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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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17 22:01  |  발행일 2025-07-17
“젖은 폐지 반값도 안되지만
날씨 가릴 처지는 아니잖아”
손에 쥐는 돈 3천~5천원뿐
17일 오전 8시 30분쯤 대구 달서구 본리동의 한 왕복 6차선도로에서 최윤성(72)씨가 장대비를 맞으며 아침부터 모은 폐지를 나르고 있다. 구경모 기자

17일 오전 8시 30분쯤 대구 달서구 본리동의 한 왕복 6차선도로에서 최윤성(72)씨가 장대비를 맞으며 아침부터 모은 폐지를 나르고 있다. 구경모 기자

17일 오후 1시쯤 중구 동인동의 한 고물상 인근 주택가에서는 박성필(76)씨가 유모차를 개조한 손 수레에 젖은 박스를 모으고  있다. 구경모 기자

17일 오후 1시쯤 중구 동인동의 한 고물상 인근 주택가에서는 박성필(76)씨가 유모차를 개조한 손 수레에 젖은 박스를 모으고 있다. 구경모 기자

시간당 59.5mm가 퍼붓던 17일 오전 8시30분쯤 대구 달서구 본리동 왕복 6차선 도로. 굵은 빗줄기 속에서 최윤성(72·달서구 거주)씨가 리어카를 끌며 도로 위를 걷고 있었다. 빛바랜 우비와 장화는 이미 비에 흠뻑 젖었다. 리어카 위엔 비닐로 덮인 폐지 더미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도로 갓길에 오가는 차들을 피해 리어카를 밀던 최씨는 "이 정도 비면 폐지를 주우러 잘 안 나오는데,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당분간 비가 쏟아진다니 어쩔 수 없이 오늘 나왔다"고 했다.


올해로 7년째 폐지를 줍고 있다는 최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개인택시를 몰았다. 하지만 경제적 궁핍으로 애지중지하던 개인택시를 양도했다. 그때부터 생계를 위해 매일 오전 6시30분이면 거리로 나선다. 학교·상가·주택단지를 이잡듯이 야무지게 돌며 박스와 신문지를 모은다. 평소엔 오전 10시쯤 고물상으로 향하며 하루를 매조지한다. 하지만 이날은 궂은 날씨 탓에 평소보다 늦은 시각인 오전 8시에 나와 두 시간가량 폐지를 모은 뒤 고물상으로 갔다.


고물상 측도 비는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물을 잔뜩 머금은 폐지는 무게는 늘지만, 재활용을 위해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또 습기 탓에 곰팡이가 생기거나 품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커 수익성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비 오는 날 최씨가 아무리 리어카를 가득 채워도 돈벌이는 크지 않다. 최씨는 "비 맞은 폐지는 평소보다 훨씬 무겁지만 쳐주는 값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며 "그렇다고 하루살이 처지에 날씨를 가릴 수는 없다"고 혀를 끌끌 찼다.


이날 최씨가 고물상에서 받은 폐지 값은 3천500원. 이마저도 전날 남은 폐지까지 같이 끌어모아 거둬들인 수입이다. 최씨는 "하루에 많아야 5천원, 보통은 3천원 정도 번다. 매일 이 정도라도 손에 쥐어야 생계가 유지된다. 오늘 받은 금액은 비가 와서 제값을 받지 못했다. 내일은 비가 조금이라도 덜 왔으면 좋겠다"며 리어카를 집방향으로 틀었다.


같은 날 오후 1시쯤 중구 동인동 한 고물상 인근 주택가에서 만난 박성필(76·중구)씨는 유모차를 개조한 손수레를 끌며 젖은 박스를 모으고 있었다. 그는 우비도 없이 폐지를 수거하고 있었다. 끼니 해결도 쉽지 않다 보니 장대비에도 폐지를 모아 생계를 꾸려야 하는 상황이란다. 박씨는 "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까, 조금씩 모아 놔야 한다"며 "폐지는 ㎏당 100원을 받는데, 몸이 아프지 않은 날엔 최대한 모아 두는 게 좋다"고 했다.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6월 기준 지역 내 폐지를 수거해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 수는 1천189명이다. 이 중 900여명은 건강관리에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 측은 "폐지 수집 노인들을 위한 돌봄과 일자리 등 지원 방안을 확대할 예정"이라며 "이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보건복지 서비스와 적극 연계하고, 안정적인 소득 기반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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