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광훈 소설가
매주 수요일 밤이면 나는 아내와 함께 소파에 기대어 앉아 SBS Plus에서 방영되는 '나는 솔로'란 연애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한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연애프로그램이라니…'하고 핀잔을 주실 분도 계시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동안에는 왠지 내가 늙었다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니, 나는 어느새 스물아홉의 영호가 되고, 서른일곱의 경수도 되어, 예전, 내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위해 악전고투하던 그 아름다웠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나는 솔로'의 팬이라면 실시간 인물평은 어쩔 수 없는 입덕의 과정이다. 나 역시 그렇다. 상철은 찌질하다느니, 영숙은 순수하다느니, 정수와 현숙은 감정표현이 거칠다느니, 옥순은 자기홍보를 위해 나온 것 같다느니, 순자는 이번 기수의 빌런이 될 것 같다느니…… 온갖 감상평을 쉴 새 없이 토해낸다. 물론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흥분에 찬 목소리로 옆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재잘대기도 한다. "나도 연애할 때 광수처럼 저렇게 말이 많았어?", "나도 당신 손잡을 때 영수처럼 저렇게 떨었어?", "나도 삼겹살 먹을 때 쌈 플러팅을 한 적이 있어?", "나도 롱디에 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있어?" 그럴 때 마다, 아내는 "어휴! 시끄러운 남자. 그냥 조용히 볼 수 없어? 내가 왜 이 남자랑 결혼했는지 몰라…"라며 나의 들뜬 감정에 찬물을 끼얹는다.
그렇게 얼음 같은 아내의 매서운 돌직구와 함께 '나는 솔로'는 끝이 나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난 조용히 일어나 작업실로 향한다. 문을 닫고, 컴퓨터를 켠 다음 한글오피스 대신 유튜브를 활성화시킨다. 난 검색창에 '소설 창작' 대신 '나는 솔로'를 잽싸게 타이핑한다. 그렇게 다시 유튜버들이 생산해내는 온갖 '나는 솔로' 후기영상 및 분석영상들을 섭렵한다. '긴급, 정숙 영철 현커로 밝혀지다', '옥순, 예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영식이 알아야 할 여자들의 심리상태'와 같은 자극적이고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낚시영상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날 밤, 난 결국 솔로나라의 광수가 되어 영자와 최종커플이 되는 멋진 꿈까지 꾼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수요일은 다시 다음 주 수요일이 된다.
한 번은 대구 출신 출연자의 구수한 사투리에 동화되어 '내가 만약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상상해 본 적도 있다. 풋! 물론 뻔한 스토리일 것이다. 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자기 어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에 드는 여자 출연자 주위만 빙빙 맴돌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전 최종선택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쓸쓸히 대구로 귀향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난 어쩌면 예상치 못한 실수나 실언으로 인해 엄청난 빌런이 되었거나, 그로 인해 나의 인스타가 악플로 도배되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과 마주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대한민국 청춘남녀라면 누구라도 출연신청가능하다는 촌장엔터테인먼트의 홍보영상처럼, '나는 솔로'에 등장하는 출연자들의 대부분은 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친숙한, 보통의 이웃들이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꾸며진 상품이 아니라는 점이 나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에 더욱 더 몰입케 만든다. 그렇게 그들의 젊음과 순수함, 미숙함과 친숙함이 나의 늙음을, 나의 상실을, 나의 소멸을 위로해 준다. 우린 항상 솔로인 것 같지만 사랑이란 단어를 잃지 않는 이상 결코 솔로가 아닌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난 이 프로그램이 영원했으면 한다. 남규홍 피디를 비롯한 제작진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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